"역시 버핏이 옳았다"…4년간 최대 6배 오른 日 종합상사 [양병훈의 해외주식 꿀팁]
벅셔헤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오른쪽)과 고(故) 찰리 멍거 부회장. 연합뉴스
벅셔헤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오른쪽)과 고(故) 찰리 멍거 부회장. 연합뉴스
해외 투자의 길잡이가 되겠습니다. 해외 증시에 대한 최근 이슈와 전문가 견해, 그리고 유용한 데이터를 찾아볼 수 있는 꿀팁을 전합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헤서웨이가 일본 5대 종합상사 투자에서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대 상사 중 하나인 마루베니는 벅셔헤서웨이가 처음 투자 사실을 밝힌 2020년 7월(월말 기준)부터 이달 13일까지 522.89%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닛케이225지수 상승률(75.86%)을 멀찌감치 따돌리는 성과입니다. 다른 종합상사 주가도 같은 기간 최대 400.38%(미쓰이물산)에서 최소 210.04%(이토추상사) 올랐습니다. 가장 적게 오른 이토추상사의 상승률도 닛케이225지수 상승률의 3배에 달합니다.

일본 기준금리 인상 등의 요인으로 최근 닛케이225지수가 조정을 받는 동안에도 이들 종합상사 주가는 여전히 양호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닛케이225지수는 지난 3월 22일부터 이달 13일까지 7.08% 떨어졌는데, 이 기간에도 마루베니 등 4개 종목은 7.31~12.83% 올랐습니다. 5대 종합상사 중 유일하게 주가가 떨어진 미쓰비시상사도 하락률이 5.57%에 그쳐 닛케이225지수보다는 나았습니다.


버핏이 종합상사 투자 방침을 밝혔을 때는 증시가 코로나19 사태로 저점을 찍고 나서 한창 상승하던 때였습니다. 그해 상반기에는 "더블딥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는데, 하반기부터는 그런 생각도 거의 없어졌죠. 이때부터 이듬해 단기 고점(9월 14일)까지 닛케이225지수는 41.27% 올랐습니다. 제로금리로 증시에 막대한 유동성이 공급된 게 이런 상승의 배경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5대 종합상사는 최소 41.71%(스미토모상사)에서 최대 99.86%(마루베니) 올랐는데, 닛케이225지수보다는 많이 오르긴 했지만 초과수익률은 최대 2배 정도에 그쳤습니다. 차이는 이후부터 극적으로 커지기 시작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된 거죠.

버핏의 이 투자를 지금 와서 살펴보면 "기본에 충실한 투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식투자에서 '기본'이라고 함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항상 지키기는 어려운 것"일 텐데요. 증시가 고공행진하던 2020년 하반기는 어떤 기업이 얼마만큼 큰 청사진을 그리는지, 얼마만큼 휘황찬란한 장밋빛 전망을 펼치는지가 주가를 결정짓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버핏은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늘 하던 것처럼 '내 손에 당장 짭짤한 수익을 쥐여줄 수 있는 기업"에 투자했습니다. 그게 일본 5대 종합상사였습니다.

버핏의 투자 파트너로서 지난해 작고한 찰리 멍거 전 벅셔헤서웨이 부회장은 생전에 "투자 당시 일본의 10년 만기 채권 금리는 0.5%에 불과했고 종합상사들은 '경제적 해자'를 보유한 오래된 기업들이었다"며 "10년 만기로 돈을 빌려 5% 배당을 하는 5대 종합상사 주식을 매입하면 더 투자하거나 고민하지 않고서도 막대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멍거가 말한 경제적 해자는 '경쟁자가 침범하기 어려운 자기 고유의 사업 영역'을 뜻하는 말입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패트릭 라인뮐러 교수는 이에 대해 "일본 5대 종합상사는 견고한 사업 영역이 있고, 해당 영역에서 수익성과 무역 지배력이 있다"며 "그랩, 알리페이, 위챗 등 많은 글로벌 슈퍼 앱이 이들의 사업 영역에 침범하고자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자산 가격이 고공행진하며 5% 수익률을 얕잡아보던 때, 버핏은 '지속적인 5%의 위력'을 간과하지 않았죠.
미쓰비시상사의 천연가스 운반선. 미쓰비시상사의 회사 소개 동영상에서 갈무리
미쓰비시상사의 천연가스 운반선. 미쓰비시상사의 회사 소개 동영상에서 갈무리
멍거가 배당에 대해 언급한 건, 기업이 돈을 잘 벌어도 그 수익을 주주에게 나눠주지 않으면 주주 입장에서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국내 한 유명 가치투자자가 최근 수년간 순현금 기업(보유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현금이 시가총액보다 많은 기업) 지분을 집중 매입했지만 성과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기업이 돈을 잘 벌긴 하지만 그걸 주주에게 배당 등으로 나눠주지 않았고 그 결과 투자자들이 이 기업 주식을 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버핏은 이런 '밸류 트랩'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버핏이 5대 종합상사에 투자한 건 이들 기업이 누진배당제를 실시하는 등 주주환원에도 적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누진배당제는 기업 실적과 관계없이 최소한의 배당 수준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이토추상사와 미쓰비시상사가 먼저 도입했고 최근 마루베니와 미쓰이물산이 뒤따랐습니다.

버핏이 5대 종합상사 지분을 매입한 뒤 "내가 이 회사에 투자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다 이유가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버핏은 '회사의 경영자가 얼마나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기업을 경영하는지'를 중요한 투자 판단의 척도로 보는데요. 버핏이 이들의 지분을 매입한 사실을 밝힌 건 해당 기업의 임직원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버핏의 발표 뒤 이들 기업 사이에서는 "버핏이 우리 회사 주식만 처분하면 부끄러울 것"이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죠. 노무라자산운용의 미야자키 요시히로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이 종합상사 경영진으로 하여금 높은 자기 규율과 건전한 경영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버핏이 옳았다"…4년간 최대 6배 오른 日 종합상사 [양병훈의 해외주식 꿀팁]
"역시 버핏이 옳았다"…4년간 최대 6배 오른 日 종합상사 [양병훈의 해외주식 꿀팁]
이들 기업에 지금 투자해도 괜찮을까요? 이미 오를 만큼 오른 상황이라 지금 들어가면 물리는 건 아닐까요? 미래를 확실히 알기는 어렵지만, 주가가 오른 만큼 실적도 크게 개선돼 이들 기업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은 여전히 좋은 편입니다.

예컨대 버핏이 5대 종합상사 투자 사실을 밝힌 2020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에 미쓰이물산의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은 11.56배였습니다. 당시 이 종목의 주당순이익(EPS)은 199.18엔이었습니다. 이후 실적이 크게 개선돼 2023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에 이 종목의 EPS는 705.60엔을 기록했습니다. 실적 개선의 영향으로 주가가 많이 올랐지만 이 종목의 PER은 지난 10일 종가 기준 10.92배, 12개월 선행 순이익(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가 집계한 증권사 추정치 평균) 기준 12.82배입니다. 4년 전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다른 종합상사 종목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그리고 최근 공시에 따르면, 버핏은 이들 기업의 지분을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