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 허브로 불린 홍콩 자본시장이 쇠락하고 있다. 사모펀드(PEF)·벤처캐피털(VC) 투자금이 빠져나가는 등 자본시장이 급격히 냉각되면서 현지 투자은행(IB)업계에 대규모 정리해고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고조된 데다 중국 당국의 규제도 강화된 탓이다.

IPO 급감…PEF·VC 자금 조달도 부진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자본시장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460억홍콩달러(약 7조8894억원)를 기록했다. 1년 전 대비 56% 감소했다. 닷컴 거품이 꺼진 2001년 이후 최소치다. IPO를 성사시킨 기업 수는 전년 대비 80% 감소한 67개에 그쳤다. 10억홍콩달러 이상 조달한 기업은 13개에 불과했다.
'亞 금융허브' 홍콩의 추락…투자금 빠지고 해고 칼바람
홍콩 PEF와 VC의 자본 조달 규모도 급감했다. 금융정보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PEF와 VC의 자본 조달액은 2021년(533억달러) 대비 81% 줄어든 102억달러에 그쳤다. 2022년과 비교해도 66% 감소했다.

홍콩 자본시장이 냉각되면서 고용시장에도 한파가 들이닥쳤다. 골드만삭스, JP모간, 씨티그룹 등 글로벌 금융기업은 연달아 홍콩지사 인력을 감축하기 시작했다. 홍콩 증권선물위원회가 주관하는 금융 자격증 보유자 수는 2021년 말부터 작년 말까지 2년간 600여 명 감소한 4만4722명을 기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홍콩 IB업계에서 연달아 임금 삭감도 단행될 예정이다. 최소 20% 이상 인센티브를 삭감하고, 급여도 1년 전보다 30~40%가량 줄일 방침이다. 홍콩 고위급(C레벨) 임원 전문 인사 컨설팅 업체인 웰슬리의 찰렌 웽 전무는 “홍콩 투자업계의 심리가 전반적으로 암울한 상태”라며 “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올해가 바닥이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업에 의존하던 홍콩 경제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홍콩 국내총생산(GDP)에서 금융업 비중은 23%에 달했다. 고용은 7.5%를 차지했다. 지난해부터 인력 감원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올해 그 충격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홍콩의 올해 실질 GDP 증가율 전망치는 1.8%로 작년(3.2%) 대비 1.4%포인트 감소할 전망이다.

새 국가보안법에 떠는 외국사들

홍콩 투자업계가 흔들리는 배경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있다.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2022년부터 무역 갈등으로 심화한 뒤 글로벌 투자금이 홍콩 시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중국 당국이 홍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이탈 행렬은 더 커지기 시작했다. 캐나다 공공정책 연구기관 프레이저연구소가 지난해 9월 발간한 ‘세계 경제적 자유: 2023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은 해당 보고서가 작성되기 시작한 1970년 후 처음으로 지난해 ‘세계 최고로 자유로운 경제 지역’ 자리를 싱가포르에 내줬다. 프레이저연구소는 “중국 정부가 홍콩에서 중대한 신규 진입 장벽을 세우고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제한하며 비즈니스 비용을 증대시켰다”고 지적했다.

홍콩에서 새로운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자본 이탈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19일 홍콩 입법회(의회)를 통과한 새 국가보안법은 반역이나 내란 등 범죄에 대해 최대 종신형을 선고하고, ‘외부 세력’과 공모한 범죄는 훨씬 더 강하게 처벌할 수 있게 했다. 중국이 홍콩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2020년 제정한 기존 홍콩보안법을 보완하는 법이다. 외국 기업들은 외부 세력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에 외국 정부와 정당, 국제기구, 경영진이 포함됐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를 홍콩의 대체지로 검토하는 움직임이 외국 기업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한 외국 기업 고문은 “다수의 회사가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본부였던 홍콩을 이제는 중국 대륙과 같이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