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수갑' 찬 미국…열쇠는 파월 손에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미국인들 사이에서 '황금 수갑'(Golden Handcuffs)을 찬 신세라는 한탄이 나오고 있습니다. 황금 수갑은 원래 직원들이 회사를 나가지 못하게 묶어두는 인센티브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부동산에선 다른 집으로 이사 가지 못하도록 하는 족쇄를 뜻합니다.

누구나 그러하듯 미국인들도 좁은 집에서 넓은 집으로 옮기고 싶어 하지만 고금리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새 집으로 이사하는 순간 새로운 대출금리를 적용받게 돼 이자가 두 배 이상으로 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금리 대출을 부담하며 현재 집에 안주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저금리는 황금이요 좁은 집은 수갑입니다. 그래서 '황금 수갑'에 묶여 있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모순적이고 대조적인 상황은 이 뿐만 아닙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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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미국 경제는 안도감을 주지만 견고한 인플레이션은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경기는 안정감을 주지만 미래 어느 시점에 꼬꾸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여전합니다. 미국 국가경제는 굳건하지만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다는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부자들은 살만 해도 서민들이 한계 상황에 내몰린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상황에서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어떤 결정을 할까요. 20일(현지시간) 결과가 나오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까요. 아니면 예전의 판단을 고수할까요. 극과 극의 지표 중 Fed가 어떤 선택을 할 지를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일정과 이슈를 살펴보겠습니다.

'황금수갑' 찬 미국인들

'황금수갑' 찬 미국…열쇠는 파월 손에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이번 주엔 미국과 일본 외에 영국(20일)과 호주(21일) 등이 기준금리를 결정합니다. 영국과 호주 모두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크지만 향후 금리 인하 시점과 속도가 더 큰 관심사입니다. 여러 변수에 따라 그 시기와 속도가 결정될 전망입니다.

우선 미국에선 부동산 시장이 큰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넓은 새집으로 이사하고 싶은 건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바람입니다. 미국에선 금리 상승으로 그 길이 막혔습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미국 주택담보대출은 30년 고정금리입니다. 2022년 이전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은 연 3%대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기지 금리는 연 7%가 넘습니다. 이사는 포기하고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황금수갑'에서 벗어날 수 없다"거나 "'주거 사다리'가 끊겼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황금수갑' 찬 미국…열쇠는 파월 손에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이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난 7일 국정연설에서 선물 보따리를 내놨습니다. 끊어진 주거 사다리를 잇기 위해 주택 구입이나 이자 비용을 줄여주려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생애 첫 주택 구입자에게 2년간 1만불의 세액공제를 제공해주겠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주택대출 이자에 대해 세액공제도 포함시켰습니다. 더 많은 임대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200억달러의 기금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악시오스의 지적대로 "이러한 정책은 허무맹랑한 공상"에 불과합니다.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이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줘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다들 선거용 공약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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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아젠다를 제기함으로써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Fed엔 국민들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데 함께 하기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주택 vs 신용카드어느 연체율이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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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안정적입니다. 팬데믹 시기에 8%까지 치솟았다가 3%대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30년 고정금리여서 이자 비용이 그대로 유지돼 연체자들이 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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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토론과 신용카드 대출은 그렇지 않습니다. 연체율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90일 이상 연체한 비율은 한자리수 지만 일반 연체율은 20%를 넘었습니다. 지역별로 보면 중부와 남부 지역의 카드론 연체율은 30%가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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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론과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이 급등한 건 모기지와 달리 변동금리이기 때문입니다. 기준금리 상승 영향이 그대로 반영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신용카드 대출 금리는 10년 간 두 배로 뛰었습니다. 2013년엔 평균 12.9%였던 카드대출(리볼빙+카드론) 금리는 지난해말 22.8%가 됐습니다. 30% 이상 금리도 적지 않습니다. 1994년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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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론과 오토론의 이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미국 가국의 부채잔액은 지난해말 17조5000억달러로 급증했습니다. 4년 전인 2019년말보다 25%(3조5000억달러) 증가했습니다. 물론 여기엔 주택대출도 증가한 게 반영됐습니다. 그럼에도 카드론 증가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11분기 연속 늘어나 카드론 규모가 1조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스콧 샌본 렌딩클럽 최고경영자(CEO)는 "1980년대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은 소비자들의 경제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카드론 규모"라고 지적했습니다.

주거비에 대한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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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1월과 2월의 인플레이션 지표는 좋지 않았습니다. 시장이 기대하는 속도만큼 완화하지 않았습니다. '라스트 마일'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느낄 만큼 인플레 완화의 길은 울퉁불퉁합니다.

그동안 속을 썩였던 근원물가보다 헤드라인 물가의 완화 속도가 지지부진합니다. 특히 개인소비지출(PCE)보다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더 문제입니다. 헤드라인 기준으로 PCE 물가의 전년 동기대비 상승률은 2%대로 내려왔지만 CPI 상승률은 여전히 3%입니다.
'황금수갑' 찬 미국…열쇠는 파월 손에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국제유가를 중심으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한 영향이 크지만 뭐니뭐니해도 인플레의 쓴맛을 느끼게 하는 건 주거비입니다. CPI의 40% 안팎을 차지하는 주거비는 여전히 6%에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집 주인들의 가상 주거비용인 인정 주거비(OER)가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월대비 상승률은 조금씩 둔화추세에 있고 민간 부동산 업체들의 렌트비 상승률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2년 전 정점을 찍고 지난해 2~3분기부터 예년 평균에 수렴하고 있습니다. 정부 주거비 통계가 민간 통계보다 12개월 가량 후행하는 점에 비춰 올 2~3분기 사이에 주거비 상승률도 역사적 평균인 3%대로 내려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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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 인사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요. 성장률 전망치는 상당부분 올리겠지만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오리무중입니다. 그 상승 여부나 폭에 따라 금리 인상 횟수가 결정됩니다.

Fed의 물가 참고 지표는 PCE지만 CPI를 어느 정도 고려할까요. 에너지 비용 상승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주거비 추이를 어떻게 전망할까요. 소비는 견조하다고 하지만 신용카드와 자동차 대출 상황에 어느 정도 가중치를 부여할까요. 아직까지 미국 경제는 강하다고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황금수갑' 찬 미국…열쇠는 파월 손에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수많은 변수 중 어느 쪽에 더 이끌려 판단할 것인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집니다. 그 결론은 20일 FOMC 후 나오는 점도표에 집약됩니다. 구체적으로 올해 금리 인상 횟수를 몇 번으로 보느냐입니다. 기존대로 3번을 유지하느냐 2번으로 줄이느냐에 따라 금리 인하 시기도 달라집니다. 극단적 매파나 비둘기파가 아닌 중립적 위치에 있는 Fed 인사 2명만 올해 금리 전망치를 바꾸면 점도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주머니 두둑한 바이든 vs 실탄 부족한 트럼프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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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상황도 대조적입니다. 현재 지지율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앞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후 6개월째 선두입니다.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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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들어 바이든 대통령의 추격이 매섭습니다. 슈퍼화요일과 국정연설을 거치면서 지지율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격차는 2%대에서 1% 초중반대로 줄었습니다. 이달 들어 실시한 13번의 미국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5승 1무 7패를 기록했습니다. 승률은 50%에 가깝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내심 믿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정치자금입니다. 바이든 캠프는 지난달 월별 사상 최대액인 5300만달러의 정치자금을 모았습니다. 1월보다 40% 더 늘어난 수치입니다. 현금만 1억5500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출마를 선언한 뒤 3억3100만달러 이상을 모금했습니다.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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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해리슨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위원장은 "이러한 자금 규모는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던 일"이라며 "인프라 구축 면에서 우리가 우래하며 박빙의 선거 결과는 어느 쪽이 더 많은 자금을 모으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트럼프 캠프의 정치자금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두 캠프이 선거자금 규모는 20일 연방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합니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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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트럼프 캠프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와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이 지지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데다 정치자금이 잘 모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정치자금의 상당 부분을 사법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법률 비용으로 써야 합니다. 바이든 캠프는 사람을 대거 뽑고 있지만 트럼프 캠프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원들을 줄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공화당 전국위원회(RNC)의 수장에 며느리인 라라 트럼프를 임명했습니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지지율 변화나 두 캠프의 분위기도 Fed의 피벗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올해 말까지 세 번 인하냐 두 번 인하냐는 결국 정치·경제적 상황과 인플레이션 완화 속도에 따라 결정될 전망입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