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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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주요국의 물가상승률이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유럽중앙은행(ECB) 내부에선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요 국가의 재정 적자가 급증해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을 제한하는 합의도 난항을 겪는 모양새다.

블룸버그는 ECB 내 소식통을 인용해 재정 적자로 인한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정부 부채가 급증한 탓에 경제 성장세가 둔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전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유럽평의회 등 각 기관 수장들과의 비공개회의에서 향후 몇 분기 동안 유럽 경제가 침체 위기에 놓였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 라가르드 총재는 이번 회의에서 물가 상승세 억제에 대해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인플레이션이 억제되고 있다는 평가와 달리 EU의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EU의 1년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9%를 기록했다. 1년 전 상승률(11.5%)에 비해선 절반 수준이지만, 여전히 목표치(2%)를 크게 웃돈다.

라가르드 총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각 국가 간의 부채비율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이 분열될수록 시장에서 유럽 경제를 우려하는 시선이 늘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때문에 ECB는 GDP의 3%만 재정 적자를 늘리는 데에 합의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협의 단계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각 국가 통화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아서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재무장관의 협의체인 유로그룹의 재무장관인 파스칼 도노헤는 블룸버그에 "올해 안에 재정 준칙에 대한 합의를 보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의장도 "각 국가의 입장차가 확연하기 때문에 재정 준칙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재정 적자 감축안 합의가 지연되면서 유럽 기준금리에 대한 전망도 엇갈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가는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커져서다. ECB는 오는 26일 통화 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지난해 6월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던 ECB는 이후 10회 연속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현재 기준금리는 4.5%다.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는 조짐이 나타나자 시장에선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관측이 확산했다.

미국 국채 금리가 5%대로 치솟은 것도 ECB 결정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과도한 통화 긴축으로 인해 유로존 국채 금리도 급등하게 되면 국채 가치가 급격히 축소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로 시장 내 불확실성이 증가한 점도 변수로 꼽힌다.

다만 시장에선 ECB가 고금리를 장기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가 지난 13~18일 집계한 전문가 설문조사에 따르면 내년 9월부터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답변이 가장 많았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