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운용사들이 미국 주식시장의 하방 위험에 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빈센트 린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가 고객에게 보낸 투자 메모다. 일부 대형 기술주가 랠리를 주도한 미국 주식시장이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증시가 조만간 상승 동력을 잃을 것이란 우려로 인해 헤지펀드 자금이 대거 이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美주식 너무 올라"…글로벌 헤지펀드 유럽行
11일(현지시간) 골드만삭스 프라임 브로커리지 자료에 의하면 세계 헤지펀드의 미국 증시 노출 비중은 2013년 관련 집계가 시작된 이후 최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반면 유럽 주식시장에 대한 베팅 규모는 사상 최고치로 올라섰다.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PBS)는 대차거래, 신용 제공, 자문 등 헤지펀드가 요구하는 모든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헤지펀드들이 미국 기술주 랠리의 회복력에 대한 우려로 유럽 증시로 방향키를 돌렸다”고 전했다. 호주 자산운용사 앤티포즈 파트너스의 앨리슨 사바스 투자담당 이사는 “엔비디아, 애플, 아마존 등에 집중된 미 증시 랠리로 인해 몇몇 기업은 잠재적 수익성에 비해 고평가된 것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운용자산이 100억달러인 앤티포즈 파트너스는 당초 설정된 지역 지수 가중치보다 높은 약 30%를 유럽 증시에 할당했다.

사바스 이사는 “많은 미국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의 높은 멀티플을 정당화하기 어렵다”며 “엔비디아가 훌륭한 기업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가치주 투자자로서 우리는 그 배수를 맞춰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미국의 유사 업종에 비해 할인된 가격으로 책정된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에 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 상반기 미국 나스닥지수는 32% 가까이 상승하며 40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S&P500 지수도 약 15% 올랐다. 그러나 ‘끈적한’ 고물가를 잡기 위해 미 중앙은행(Fed)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강세장이 반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추가 긴축은 경기 둔화를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증시는 올 들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범유럽 지표인 스톡스600 지수는 올 상반기 5.3%가량 오르는 데 그쳤다. 영국 FTSE100 지수는 약 3.6%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맨FRM의 사만다 로젠스톡 투자리서치 책임자는 “개별 주식의 옥석을 가려 투자하는 액티브 펀드는 특정 종목에 상승세가 집중된 시장에서는 롱쇼트 수익 기회를 찾기 힘들다고 본다”며 “전반적으로 밸류에이션이 낮은 유럽 증시를 더 매력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대신 유럽’이라는 투자 공식이 위험하다는 반론도 있다. FT는 “주식 투자 심리의 척도인 콜옵션 데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 투자자는 범유럽 우량주 지표인 스톡스50에 특별히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안킷 기디아 BNP파리바 유럽 주식·파생상품 전략책임자는 “금리가 더 상승하면 가치주가 성장주의 수익률을 능가할 것이고 이는 일반적으로 (가치주가 많은) 유럽에 더 유리하다는 의미”라면서도 “하지만 미국 기술주와 나스닥을 완전히 매도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또 다른 대형은행의 PBS 담당임원은 “미국 경제가 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회복력을 보여 왔다”며 “유럽이 더 나은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에 베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대부분 투자자가 미 주식들이 고평가돼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1~2개월 동안 미 주식 시장은 오히려 10% 상승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