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이 1년 반가량 이끌어 온 연립정부가 난민 문제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해체한 직후 나온 결정이다.

뤼터 총리는 내리 4선에 성공한 네덜란드 최장수 총리로, 유럽연합(EU) 내에서도 두 번째로 오래 집권해 온 지도자다. 그런 그가 연정 붕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건 유럽에서 이민 문제가 갖는 위상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다.

뤼터 총리는 10일(현지시간) 의회에 출석해 “내게 동기를 부여하는 건 오직 네덜란드이며, 이런 관점에서 나의 위치는 이제 완전히 부적합하다”며 “어제 나는 17년 동안 이어 온 자유민주당(VVD) 대표로서의 생활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가을 선거를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계를 떠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는 11월 중순께 예정된 조기 총선에서 5선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뤼터 총리는 “나는 지금까지 잘해 왔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 물러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VVD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은퇴가) 맞는다는 판단이다. 여러 복잡한 감정을 안고 떠나겠다”고 말했다.

연정 해체가 발표된 당일까지만 해도 뤼터 총리는 “내게는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있다”며 출마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단 며칠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다만 그는 총선 때까지 임시 총리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현재의 분열된 정치 지형을 고려할 때 새 연정 구성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0년부터 재임해 온 뤼터 총리는 지난해 8월 네덜란드 최장수 총리에 등극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에 이어 EU에서 두 번째로 오래 집권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새 그는 보육 보조금 스캔들과 흐로닝언 가스전 폐쇄 여부를 둘러싼 논란 등 각종 논란에 휩싸였지만, 이에 원만하게 대응하면서 ‘테플론(타격을 입지 않는) 마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뤼터 총리를 주저앉힌 건 최근 유럽에서 정치적 화두가 되고 있는 이민 문제였다. 지난해 가을 네덜란드 북부 테르 아펠에 위치한 난민 등록 센터에 수용 규모를 넘는 난민들이 몰리면서 한 아기가 사망하자, 네덜란드에서도 논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VVD는 네덜란드로 유입된 전쟁 난민의 가족들이 추가로 입국하려 할 경우 2년의 시한을 두고, 월 200명씩의 쿼터 제한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VVD와 연정을 구성하고 있던 진보 정당인 D66와 보수 성향의 기독교연합당(CU)이 이에 완강히 반대하자 연정은 끝내 산산조각이 났다. 해당 연정은 2021년 3월 총선 이후 10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2022년 1월 가까스로 출범했지만, 18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붕괴했다.

EU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유럽 내 의사결정기구에서 고위직을 맡을 가능성도 크지 않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는 재임 내내 네덜란드 총리직을 “세계 최고의 직업”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그가 재임 기간 내내 매주 한 차례 헤이그의 한 고등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쳐 왔고, 은퇴 후에는 이 일에 풀타임(상근)에 나설 수 있다고 보도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