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관련 재판이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가운데 법원 앞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와 반대자가 충돌하자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관련 재판이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가운데 법원 앞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와 반대자가 충돌하자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성 추문과 관련한 ‘입막음 돈’ 사건으로 배심원 유죄 평결을 받았다. 1776년 미국 건국 후 처음으로 유죄 평결을 받은 전직 대통령이 됐다. 오는 7월 최종 선고에서 어떤 형량이 나오든 11월 대선 출마는 가능하지만, 보호관찰 처분을 받거나 최악의 경우 법정 구속되면 선거 운동이 제한될 전망이다. 이번 유죄 평결로 인해 지지층이 일부 이탈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34건의 문서 조작 모두 유죄

"표심 20% 흔들" vs "트럼프 지지층 결집"…'박빙' 美대선 새국면
30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막음 돈 의혹 사건의 형사재판을 맡은 배심원단은 그에게 제기된 34개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맨해튼 주민으로 구성된 12명의 배심원단은 심리 끝에 만장일치로 이같이 평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은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평결 후 법원 앞에서 “나는 무죄이고 이는(유죄 평결) 수치스러운 일이며 조작된 재판”이라며 “진짜 판결은 11월 대선에서 내려질 것”이라고 반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직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의 성관계 폭로를 막기 위해 당시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통해 13만달러(약 1억7000만원)를 건네고, 이를 회사 법률 자문비 등으로 처리한 사실이 드러나 재판에 넘겨졌다. 청구서 11건, 회계장부 12건, 수표 11건 등 각종 문서를 조작한 34건의 행위는 단순 회계 부정 범죄일 뿐 아니라 2016년 미국 대선과 관련한 선거법 위반으로도 인정됐다.

형사법원은 7월 11일 형량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최대 징역 4년형과 보호관찰 또는 벌금·가택연금 등의 형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징역형을 받아도 법률상 대선 출마에는 문제가 없다. 전직 대통령인 데다 고령에 초범이어서 수감될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다만 혹시라도 법정 구속되면 옥중 선거를 치러야 하고, 가택연금이나 보호관찰의 경우에도 유세 등 대선 캠페인에 제약을 받는다.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이번 재판에서 나온 유죄 판결을 ‘셀프 사면’할 수는 없다. 연방 검찰이 기소한 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7월 15~18일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될 예정이다. 플로리다주, 조지아주, 워싱턴DC에서도 기밀문건 무단 반출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다른 형사 사건이 진행 중이지만 선거 전에는 결론이 나지 않을 전망이다.

○지지율 영향은 전망 엇갈려

유죄 평결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표면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이 두드러진다. ABC뉴스와 입소스의 4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의 16%가 이번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적어도 그에게 투표하는 것을 재고하겠다’고 답했고, 4%는 지지를 철회할 뜻을 밝혔다.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에서는 지난 28일 기준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46%)이 조 바이든 대통령(44%)을 불과 2%포인트 앞섰다. 실질적 승부처인 조지아, 애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 등 경합주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세를 점했지만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에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몰아낼 방법은 단 하나뿐. 투표장에서”라며 지지층에 투표에 적극 나서달라고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층이 결집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 기소가 네 차례 반복된 시기에 지지율이 크게 상승했다. 이날 평결 직후에도 선거자금 모금 사이트 ‘윈레드닷컴’은 지지자의 접속이 몰려 서버가 마비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디어 전면에 자주 등장해 부동층 유권자를 끌어들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지지와 인플레이션 등에 불만을 품은 라틴·아랍계, 흑인 유권자들이 몰려나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통상 투표율이 낮은 집단이다. CNN방송은 올해 초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 조사 결과 지난 세 번의 연방 선거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 사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18%포인트 더 높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대니얼 홉킨스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그들(정치 무관심층 유권자)은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으며 트럼프가 바이든에 맞서는 사람이라면 변화를 원하고 투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