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가즈오 새 일본은행 총재가 취임과 동시에 딜레마에 빠졌다. 대규모 금융 완화가 10년 넘게 계속되면서 일본 경제가 3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당장 출구전략을 펼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시장기능 망가졌다

"금융완화 풀어? 말어?"…딜레마 빠진 日우에다
일본은행은 27일부터 이틀 동안 기준금리를 포함한 일본의 통화정책을 정하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연다. 우에다 총재가 지난 9일 취임한 이후 처음 열리는 회의다.

시장은 새 일본은행 총재가 장단기금리조작(YCC)과 같은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을 수정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은행이 2013년 4월 시작한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이 이제 10년을 넘기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금융정책을 장기간 펼친 결과 나타난 대표적 부작용은 채권시장의 기능 마비다. 최근까지 일본의 채권시장은 국채 수익률 곡선의 왜곡 현상으로 혼란을 겪었다. 수익률 곡선 왜곡이란 국채 금리가 전반적으로 높은 가운데 일본은행이 통제하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만 연 0.5% 근처에 묶여 곡선이 움푹 꺼진 모습을 뜻한다. 일본은행이 단기금리를 연 -0.1%, 장기금리를 ‘연 0%±0.5% 정도’로 통제하는 장단기금리조작을 시행한 데 따른 부작용이다.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아지는 채권의 기본 원리가 작동하지 않자 일본 기업들은 채권 시장에서 자금을 제때 조달하지 못하는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2월에는 회사채 발행액이 0를 기록하기도 했다.

빈부 격차 확대와 좀비기업 양산도 오랜 대규모 금융 완화의 부작용으로 꼽힌다. 2019년 기준 일본 최상위층의 평균 자산은 1억3511만엔(약 13억5276만원)으로 2014년보다 1030만엔 늘었다. 반면 자산이 가장 적은 계층은 부채만 215만엔 증가했다. 대규모 금융 완화로 주가가 급등한 이익은 부유층에게 돌아갔지만, 초저금리로 예·적금 이자율이 0% 수준으로 떨어진 손실은 예·적금이 주요 재테크 수단인 서민층이 떠안았기 때문이다. 2021년 말 기준 영업이익으로는 부채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 비율은 12.9%까지 치솟았다.

○국채 이자·신용등급 어쩌나

그런데도 일본은행은 섣불리 출구전략을 펼치기 어려운 처지다. 이유는 세 가지다. 금융 완화를 중단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정부 부채의 이자 비용이다. 일본의 정부 부채는 1000조엔 이상이다. 재무성에 따르면 금융 완화 중단으로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국채 이자 비용이 3조6000억엔씩 증가한다.

국가 신용등급도 떨어질 수 있다. 금융 완화 10년 새 일본의 정부 부채는 774조엔에서 1026조엔으로 불었다. 그런데도 국가 신용등급은 2014년 이후 9년째 ‘A+’(S&P 기준)를 유지하고 있다. 다섯 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일본은행이 국채의 절반 이상을 사들이면서 일본 신용등급을 지탱하고 있는데, 일본은행이 출구전략에 나서 국채 매입을 중단하면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미쓰비시UFJ리서치&컨설팅은 “국가 신용도가 흔들리면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6%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