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은행들이 일제히 기대 이상의 실적을 발표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 간 격차) 규모가 커진 덕이다. 지난달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의 줄도산 사태 이후 중소은행 이용자들이 대형은행으로 예금을 옮겨간 반사이익을 누린 것으로도 분석된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대형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투자금융 손실이 커진 탓이다.
월가 은행들, 실적 잔치…골드만 홀로 '울상'

BoA, 순이익 15% 증가

미국 2위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 1분기 순이익이 81억6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5% 증가했다고 18일(현지시간) 밝혔다. 주당순이익(EPS)은 0.95달러로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0.81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3% 늘어난 262억6000만달러로, 역시 시장 전망치(251억6000만달러)를 상회했다.

지난 14일 실적 보고를 내놓은 JP모간체이스,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 미국 4대 은행이 모두 어닝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했다. JP모간체이스는 1분기 순이익이 126억2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52% 급증했다. 미국 3위 은행인 씨티그룹은 1분기 순이익이 46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7% 증가했다고 밝혔다. 4위 은행인 웰스파고도 1분기 순이익이 50억달러에 육박, 전년 동기보다 32% 늘었다.

이들 대형은행은 작년 3월부터 시작된 Fed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예대마진 수익에서 성과를 거뒀다. 대출 금리는 올렸지만 예금 금리는 연 1% 미만 수준으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실제 BoA의 순이자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25% 급증한 144억5000만달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SVB를 비롯한 중소은행들이 파산하며 금융 소비자들이 대형은행의 예금과 머니마켓펀드(MMF)로 자금을 옮겨간 반사이익도 누렸다.

골드만삭스, 매출 5% 감소

이날 골드만삭스가 공개한 1분기 실적은 대형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부진했다. 골드만삭스의 주당순이익은 8.79달러로 시장 전망치(8.14달러)를 웃돌기는 했다. 하지만 순이익이 32억3000만달러로 전년 1분기에 비해 18% 급감했다. 매출은 122억2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5% 줄었고, 시장 예상치(127억6000만달러)도 밑돌았다.

이는 골드만삭스가 소매금융 비중이 높은 4대 은행들과 달리 금리 인상 효과와 중소은행 예금 이탈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골드만삭스가 그간 집중해온 투자금융 부문 매출은 26%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고금리 기조 속에서 기업공개(IPO)와 채권발행 시장 등이 크게 위축된 탓이다. 채권 거래와 주식 거래에서도 매출이 각각 17%, 7% 쪼그라들었다.

골드만삭스가 디지털 뱅킹 브랜드 ‘마커스’가 대출 비중을 대폭 축소하는 과정에서 4억7000만달러의 손실을 본 것도 부진한 1분기 실적을 기록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이날 마커스와 관련한 새로운 우려도 제기됐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애플 저축 계좌 출시로 인해 우리 마커스의 기존 고객을 뺏기는 ‘자기 시장 잠식(카니발리제이션)’ 현상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소매금융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애플과 손잡고 연 4.15%짜리 ‘애플통장’을 출시했지만, 그 부작용을 인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BoA는 이날 예상치를 웃도는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오는 6월 말까지 최대 4000명을 해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체 인력의 2%에 달하는 감축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코로나19 여파 이후 뜨거운 고용시장 상황으로 인해 급격히 늘렸던 채용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