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자동차기업들이 중국 부품 납품업체에 해외 공장을 설립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중국의 강력한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손발이 묶였던 경험을 해본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망 위험을 줄이기 위해 중국 기업에도 ‘탈(脫)중국’을 주문하는 것이다. 테슬라와 에어버스 등 일부 기업이 중국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있긴 하지만, 대다수 기업은 중국을 벗어나 인도 베트남 또는 인도네시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대만 문제 등을 놓고 서방과 본격적으로 대립하면서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기업도 ‘탈중국’ 행렬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장쑤성의 한 전기차 충전 부품 제조업체는 최근 입국 제한이 풀리자마자 찾아온 유럽 고객사로부터 해외 공장을 설립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 업체 관계자는 “고객사와 함께 해외 공장 설립을 검토하러 베트남 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다른 부품 공급업체들도 해외 생산기지를 확보하라는 이른바 ‘차이나 플러스 원’ 압박을 받고 있다. 폭스바겐을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 중국에 진출한 유럽 자동차기업들은 냉각 부품, 브레이크 시스템 등 각종 부품업체에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공장을 지으라고 제안했다. 독일 보쉬와 일본 파나소닉 등에 전자 부품을 납품하는 중국 업체 선라이즈테크놀로지는 베트남에 셋톱박스 공장을 지었다.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부품 인증을 서두르는 한편 미국이나 유럽의 공장 부지도 물색하고 있다. 중국 저장성 닝보의 자동차 부품업체 민스그룹은 르노그룹과 프랑스에 배터리 박스 제조를 위한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주중 미국상공회의소의 설문조사 결과 중국은 25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기업의 주요 투자국 순위에서 3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전기차 관련 중국 기업은 더 큰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이 법은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2025년부터 전기차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을 ‘외국 우려 단체’에서 조달하는 것을 금지한다.

외국 우려 단체에는 중국 업체들이 포함되는 게 유력하다. 컨설팅사 올리버와이만의 벤 심펜도퍼 파트너는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우선하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공급망 안정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무역 갈등으로 드러난 공급망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중국 외 국가에 생산기지를 마련하는 게 급선무가 됐다”고 했다.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인도

아시아 주요국은 중국을 벗어나려는 기업의 생산기지를 유치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인구 14억2800만 명으로 중국을 추월한 인도는 중국을 대신해 글로벌 제조업 공급망의 핵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인도 정부는 반도체 등 13개 제조 부문 투자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등 외자 유치에 적극적이다. 2030년까지 연간 수출액을 2조달러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지난달 내놨다. 인도의 수출액은 지난해 7500억달러를 넘어섰다. 인도 구자라트주정부는 한국 기업이 인도에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을 설립하면 건립 비용 50% 지원을 약속하는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걸었다.

정보기술(IT)·가전 기업들은 인도 공장의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애플 아이폰의 최대 생산업체인 대만 폭스콘은 인도 공장에 7억달러를 투입해 생산량을 3배로 확대하는 등 생산 거점을 급속도로 중국 밖으로 옮기고 있다. 최근엔 인도 남부 텔랑가나주에 2억달러를 투입해 에어팟 생산 공장도 새롭게 구축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역시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갤럭시S23를 인도 노이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등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베트남도 탈중국 흐름의 혜택을 보고 있다. 애플 무선이어폰 에어팟을 제조하는 고어택은 베트남 공장 설립에 2억8000만달러를 투입했다. 중국업체 럭스셰어도 베트남에서 에어팟과 애플워치 등의 생산을 늘리고 있다. 베트남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 때문에 중국 생산시설 운영에 제약을 받는 한국과 일본 등의 반도체 공장 유치도 노리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수십억달러를 투입해 연구소와 인력 교육센터를 설립하는 등의 지원책을 내놨다. 삼성전자는 올해 베트남에 33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하기로 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