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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따라잡기



미국의 증권사 구겐하임이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사태의 여파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의 전조 증상으로 나타난 베어스턴스 파산과 비슷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금의 탈중개화와 금융기관의 자산관리 실패가 발생했다는 점에서다.

다만 SVB의 붕괴가 금융 시스템의 위기로 번지는 걸 막을 기회가 있어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러더스 파산의 재현으로까지는 보지 않았다.

구겐하임파트너스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앤 월시는 지난 13일(현지시간) “SVB 혼란이 글로벌금융위기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되살렸다. 예금을 완전하게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게 하겠다는 규제당국의 발표가 이례적으로 일요일에 나온 것까지도 섬뜩할 정도로 유사하게 느껴졌다”며 이 같이 밝혔다.

다만 그는 “SVB의 갑작스러운 붕괴가 2008년 붕괴 당시의 일부 증상을 공유했지만, (사건의) 기폭제나 (위기에 휩싸인 금융기관의) 자금조달 모델 및 자산은 다르다”며 “역사 속 사건들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이해하는 게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고려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금융 부문의 위기를 관통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자금 출처의 탈중개화’가 꼽혔다. 이는 SVB에 돈을 맡긴 예금자들이 순식간에 예금을 인출하려고 몰린 것과 같이 은행을 비롯한 중개자와 투자자들 사이의 자금 조달 관계가 끊어지는 과정을 뜻한다.

탈중개화가 나타난 건 비슷하지만, 과정은 다르다.

월시는 “글로벌금융위기의 초기 경고 신호가 있었던 2008년 3월 베어스턴스는 모기지 자산의 건전성을 신뢰받지 못해 대규모 자금조달 기능을 연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JP모건이 부실자산을 구조하도록 Fed가 지시하게 만들었다”며 “그 순간 위기를 모면했지만, 같은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패니매, 프레디맥 등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SVB의 경우 예금자들이 처음에는 더 높은 현금 수익률을 추구하거나 유동성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천천히 자금을 빼다가, 이후 안전을 우려해 자금을 한꺼번에 다른 은행으로 옮기려 하면서 뱅크런(예금자들이 한꺼번에 자금을 인출하려 몰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금융기관의 자산 관리의 실책이 나타났다는 점도 SVB 사태와 베어스턴스 파산 사이의 유사점으로 지목됐다.

다만 월시는 “글로벌금융위기는 (자산에 대한) 감정인, 평가 기관, 모기지 인수자, 금융엔지니어, 규제기관 등 모기지 금융 프로세스에서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하지 못해 발생했다”면서 “이와 비교해 SVB는 동질적인 유형의 상업 고객들에 집중된 예금 기반에 의존했고, 이런 자금 조달원의 부족은 SVB의 잘못된 자산 배분으로 인해 더욱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SVB 사태가 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월시는 분석했다. 그는 “SVB보다 규모가 큰 금융기관은 포트폴리오에 대해 시가 기준 자본 테스트를 포함해 훨씬 더 엄격한 규제를 준수하고 있다”며 “가장 먼저 불거진 SVB 사태가 최악의 경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SVB 사태가 리먼브러더스의 순간이라고 믿지 않지만, 베어스턴스의 순간일 수는 있다. SVB 붕괴를 촉진한 시장의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투자자들은 Fed의 가차없고 지속적인 양적 긴축으로 인해 초래된 탈중개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