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업계의 지난해 4분기 출하량이 전년 동기보다 28%나 급감했다. 1990년대 중반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월가는 재고 증가 문제로 올해에도 PC 출하량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판매 부진을 면한 애플마저도 목표주가 하향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씨티그룹 “올해 PC 출하량도 6% 감소”


10일(현지시간) 시장조사업체 IDC는 “지난해 4분기 전세계 PC 출하량이 6720만대를 기록해 전년 동기(9350만대) 대비 28.1% 줄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전체 PC 출하량은 2억9230만대를 기록해 2021년(3억5010만대)보다 16.5% 감소했다. IDC는 “지난해 4분기 출하량은 인텔 반도체 공급난이 있었던 2018년 4분기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지난 몇 개월간 과도하게 쌓인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기업들이 할인에 나서면서 평균 PC 판매 가격도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날 나란히 PC 출하량 데이터를 발표한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도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난 4분기 출하량의 감소폭이 가장 컸다”고 밝혔다. 가트너는 PC 시장 침체의 원인으로 △세계 경기 침체 전망 △계속되는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흐름 등을 꼽았다. 키타가와 미카코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유행 기간에 새 PC를 구입했던 소비자가 많아 소비자들의 구매 의욕도 떨어져 있는 상태”라며 “기업들도 PC 구매 시기를 늦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체별로는 지난 4분기 시장점유율 3위(16.1%) 업체인 델의 출하량 감소폭(37.2%)이 가장 컸다. 시장점유율 기준 업계 1위(23%)인 레노버, 2위(19.6%)인 HP의 감소폭은 각각 28.5%, 29%를 기록했다. 이들 3개사의 주가는 지난해 나란히 28% 하락했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 하락폭(19.4%)을 웃돈다. 투자정보매체 시킹알파에 따르면 짐 수바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는 “올 상반기 PC 재고가 계속 넘치는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며 “PC 출하량은 올해 6% 줄어든 뒤 내년 3%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열린 WWDC22 기간 동안 새롭게 디자인된 맥북에어 노트북 디스플레이 옆에 서 있는 모습. 사진=AFP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열린 WWDC22 기간 동안 새롭게 디자인된 맥북에어 노트북 디스플레이 옆에 서 있는 모습. 사진=AFP

판매 선방한 애플, 터치스크린 PC 추진

PC 업계가 침체의 늪에 빠진 사이 애플은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시장점유율 4위(11.2%)인 애플은 지난해 4분기 출하량 감소폭이 2.1%에 불과했다. 지난해 전체로 보면 애플은 2860만대를 공급해 2021년(2790만대)보다 출하량이 오히려 2.5% 늘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 매출에서 PC 브랜드인 ‘맥’의 비중은 10.2%를 기록해 2021년(9.6%)보다 0.6%포인트 늘었다. 태블릿 브랜드인 아이패드 매출 비중(7.4%)보다 많다.

11일 블룸버그는 “애플이 2025년 출시를 목표로 터치스크린 기능을 탑재한 맥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도 내놨다. 터치스크린 PC는 레노버, HP, 델 등 경쟁사가 이미 공급하고 있지만 애플에겐 일종의 금기나 다름없었다. 애플 창립자인 스티븐 잡스가 PC 모니터에 손을 댄다는 개념에 대해 “인체공학적으로 끔찍하다”며 “오래 쓰다 보면 팔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어서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2012년 “태블릿과 노트북을 합치는 건 토스터와 냉장고를 합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새 PC 모델 출시에 대한 시장 기대감이 커졌지만 월가는 애플 주가에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날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스는 “제품군 전반에 걸쳐 수요 약세가 나타나고 있다”며 애플 목표주가를 144달러에서 133달러로 낮췄다. 애플 주가는 이날 전일 대비 2.11% 오른 133.49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