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뉴욕증시가 연패의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빅테크'의 실적은 인력난과 물류난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경제 성장률은 물가 상승률에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서방 국가들의 제재는 자원 민족주의 앞에 힘을 못쓰고 있습니다.

증시가 연전연패에 빠진 건 당연히 인플레이션 때문입니다. 여전히 수요는 강하고 공급은 약합니다. 강한 건 줄이고 약한 건 늘려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전자는 긴축이고 후자는 공급망 다변화입니다. 수요 줄이겠다고 급하게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공급을 확대하고 싶지만 '공공의 적'이 된 러시아와 중국을 대체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긴축과 공급 전쟁은 공교롭게 '민주 진영'과 '비민주 진영'의 진영 대결이 되고 있습니다. 민주 진영 국가들은 하나같이 긴축을 하겠다고 아우성이고 비민주 진영 국가들은 전쟁과 봉쇄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민주 진영 국가들의 긴축 정책으로 수요는 일부 꺾일 수 있겠지만 비민주 진영 국가들의 공급망 차질이 풀리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은 완전히 해소되기 쉽지 않습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결과적으로 안보와 경제를 하나의 틀로 볼 수밖에 없는 '안·경 시대'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안·경'이라는 틀을 끼고 오는 3~4일(현지시간)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지켜봐야 합니다. '잔인한 4월'의 뉴욕증시는 각종 변수와 진영 간의 격투기 경기였다면 '셀 인 메이'(Sell in May)라는 5월은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긴축 '원맨쇼'로 시작합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4일 오후 2시30분 기자회견장에 나올 제롬 파월 의장의 표정과 어조 하나가 시장의 중요한 시그널이 될 수 있습니다. 금리인상과 양적긴축 시간표를 유추하는데 핵심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긴축에 대한 파월 의장의 발언 수위에 따라 증시가 '안도 랠리'를 하느냐 '긴축 발작'을 하느냐가 결정될 전망입니다.

파월 의장의 '빅스텝'에 대한 관전평이 애매할 땐 FOMC 이후 출연금지가 풀리는 Fed 인사들의 발언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Fed 인사들의 무더기 출연이 잡혀 있는 6일엔 4월 미국 고용지표도 나옵니다. 너무나 탄탄해 관심을 덜 받고 있는 고용시장이지만 임금 상승 추이는 챙겨볼 만합니다.

'빅스텝'은 조연, 주연은 '빅 타이트닝'과 '자이언트 스텝'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5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50bp 올리는 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미 연방기금(FF) 선물 시장에서 Fed가 5월에 '빅스텝'을 할 확률은 97%가 넘습니다. 1주일 전엔 99.6%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건 향후 금리인상 일정입니다. 분기말이 아니어서 이번 FOMC에선 점도표나 경제전망이 나오지 않습니다. 유일한 단서는 FOMC 결정문과 파월 의장의 입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4일 기자회견 때 파월 의장이 몇가지 힌트를 줄 가능성이 큽니다. 파월 의장이 대놓고 "75bp 인상을 할 수도 있다"고 하기보다 '앞으로 75bp 인상을 할 수 있다는 시장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최근 Fed의 18번이 된 '선제적'(front-loading) 조치 같은 표현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75bp를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면 시장은 요동치겠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파월 의장이 선문답을 동원해 열린 결말로 끝맺을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이번 FOMC의 주인공은 Fed의 대차대조표 축소, 양적긴축(QT)이 될 게 유력합니다. 이미 이번 FOMC에서 양적긴축에 대해 논의한다고 했기 때문에 일부 결론이 나올 전망입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양적긴축의 시작 시점과 속도, 종착점 등이 관건입니다. 가령 5월에 시작해 9월까지 월 950억달러를 줄이겠다고 하면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9조달러 수준인 Fed의 자산을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하면 요동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FOMC 결과를 소화하고 하루 뒤인 6일엔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은행 총재,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트 연은 총재,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연설을 합니다.

"임금에 물가까지...모든 것에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긴축을 하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경기후퇴는 피할 수 없습니다. 정도의 문제입니다. 운영의 묘를 다해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면서 경기침체를 막기를 바랄 수 있지만 그건 서커스에 가깝습니다.

연착륙은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파월 의장 같은 정책 집행자들의 입에서만 나오고 있습니다. 갈수록 경착륙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도이치뱅크 같은 투자은행 뿐 아니라 전직 고위관료들도 경착륙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습니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24개월 이내 경기후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상했습니다.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1940년대 이후 실업률이 0.3%포인트 높아질 때 경제는 전면적인 경기후퇴에 빠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경착륙론자들의 머릿 속에는 '버블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증시와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있다는 건 기본이고 노동시장과 실물시장에도 버블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41년만의 최고치로 치솟은 인플레이션과 지난해 대비 두 배로 높아진 임금 상승률이 정상은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이런 거품을 인위적으로 제거하거나 버블이 자체적으로 터진다면 경기침체로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진영 논리가 판치는 '글로벌 공급망' 사태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공교롭게도 통화정책마저 진영논리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호주, 한국 등 민주 진영 국가들은 긴축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 '비민주 진영' 국가들은 여전히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주요 국가 중 일본 정도가 예외인데 일본도 엔저 충격을 영원히 견디기 힘든 상황입니다.

비민주 진영 국가들의 통화정책 방향은 세계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진 게 많은 국가들이어서 세계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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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가스를 볼모로 유럽에 '가스라이팅'을 하는 러시아. 엄청난 원가 경쟁력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 두 국가 모두 세계의 공급망 시장에선 대체불가토큰(NFT)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세계의 곳간인 우크라이나가 문을 닫고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까지 미국과 척을 지면서 공급망 위기는 꼬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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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습니다. 러시아를 대신해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게 문제입니다. 각종 반대를 이겨내더라도 물리적으로 2026년이 돼야 유럽과 직통 가스관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미국은 또 '니어 쇼어링'(인접국 중심 공급망 재편)과 '깐부 쇼어링'(동맹국 위주의 공급망 재편) 등으로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 하지만 중국 수입액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대만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유행병처럼 번지는 인플레이션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이번 주엔 FOMC 뿐 아니라 미국 4월 고용지표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4월 실업률은 1969년 이후 53년 만에 가장 낮은 3.5%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고용시장이 강한 만큼 Fed가 긴축에 나서는 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는 2일 발표되는 ISM 구매관리자지수(PMI)가 경기침체의 신호를 보내면 Fed도 멈칫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엔 대어급은 없지만 S&P 기업 중 화이자, 우버 등 160개 안팎의 기업이 어닝 시즌을 이어갑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미국 외에 다른 나라들도 긴축의 고삐를 죕니다. 호주(3일)와 영국(5일)이 기준금리를 결정합니다. 영국이 이번에 4회 연속 금리를 인상하면 기준금리는 2009년 이후 가장 높은 1%가 됩니다.

이밖에 아이슬란드(4일)와 체코, 폴란드, 노르웨이(이상 5일)도 통화정책 회의를 엽니다. 이 국가들도 지난달 28일 스웨덴이 밝힌 것처럼 긴축 시간표를 급격히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으로 바꿀 가능성도 있습니다.
"주식 부동산에 임금과 물가에도 거품"...커지는 버블 논쟁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스웨덴은 2024년에나 기준금리를 올리겠다고 하다가 이번에 2분기부터 인상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2024년 예상 금리도 0.25%에서 1.75%로 대폭 올랐습니다.

4일 브라질의 금리결정과 5일 터키의 인플레이션 지표도 들불처럼 번지는 긴축 심리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주엔 파월 의장의 입에서 '빅스텝' 외에 '빅 타이트닝'이나 '자이언트 스텝' 발언이 나오느냐 여부에 따라 증시가 '안도 랠리' 또는 '긴축 발작'을 할 전망입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