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악당이 등장한다. 이 악당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로 알려져 있는데, 아테네 인근 케피소스 강가에서 살았다. 이곳에 그는 여인숙을 차려 놓고 손님이 들어오면 집 안에 있는 쇠 침대에 눕혔다. 쇠 침대는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가 있었는데, 키가 큰 사람에게는 작은 침대를 내주고 작은 사람에게는 큰 침대를 내주었다. 그래서 키가 침대보다 커서 밖으로 튀어나오면 침대의 크기에 알맞게 머리나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고, 작으면 몸을 잡아 늘여서 죽였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주주 이외에 기업 활동으로 영향을 받는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이익까지 고려해야만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고 그래야만 궁극적으로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이해당사자 중심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강조되고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탄력적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Resilience)가 기업들마다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위와 같은 이해당사자 중심주의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기업 활동이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상시적으로 고려하며 경영활동을 해야 하고 이렇게 하도록 하기 위한 기업의 내부 시스템과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기업에게 이러한 시스템과 절차를 갖추도록 의무화 하는 법이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프랑스의 ‘인권실사법(2017)’, 네덜란드의 ‘아동노동 실사법’(2019), 그리고 최근 EU에서 ‘지속가능한 기업지배구조 법안’의 일환으로 논의되며 올 연말 EU의회가 발표 예정인 ‘기업의 ESG실사(Due Diligence)법안’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법무부 역시 그 도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의 인권 관련 실사 의무화법 중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독일의 ‘공급망 실사법’은 지난 6월 의회를 최종 통과해 2023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에 의하면 기업들은 자신의 사업영역 및 직·간접적 공급업체에서 ‘인권’ 및 인권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토양, 수질 오염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한마디로 자기 회사뿐 아니라 공급망에 존재하는 공급업체들의 인권 및 환경에 대해서도 일정 수준의 준수를 요구하고 관리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 법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국내 대기업들에게 직접 적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국내외 기업들의 공급망에 속해 있는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돼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세계적 IT기업인 애플은 2030년까지 제조 공급망 및 제품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기업 활동 전반에서 탄소 중립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애플은 이미 본사 기업 운영에 있어 탄소 중립을 달성한 상태이며, 이를 협력업체까지 요구하겠다는 것인 바, 애플에게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들 역시 2030년까지 애플 부품을 만드는데 탄소 중립을 달성하여야 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애플과의 공급 관계는 종료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이 공급망 전반에 대하여 공급업체들에게 인권과 탄소 중립 등 환경에 대한 일정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예기치 못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 내에서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하여 파견 내지 하도급 노동자들에 대하여 보호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직접고용 의무 및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우리 판례에 의하면 원청업체가 인력이나 서비스 등을 공급하는 업체들에 대하여 인사·노무 관리에 개입하는 경우, 또한 작업 방식에 관여하는 경우 소위 불법파견 내지 위장도급으로 판단되어 위와 같은 민·형사 상의 법적 책임을 물게 된다.

이와 같은 법 체계와 판례를 볼 때, 위 독일의 공급망 실사법이 대한민국의 기업들에게 적용되는 경우, 또한 애플과 같이 투자자 내지 원청업체들의 요청에 의하여 공급망을 관리하는 경우, 공급망 관리를 하는 기업들은 위와 같은 ‘불법 파견’의 리스크를 부담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급업체에 대한 인권 및 환경과 관련한 요청은 자칫 공정거래 관련 법률에서 금지하고 있는 부당한 간섭 내지 소위 '갑질'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관리가 요구되는 이유는 공급망 전체에 대하여 일정 수준의 인권과 환경 관련 보호를 통하여 공급망 모두가 상생 내지 윈-윈 하도록 하는 것이고, 그러한 공급망 관리는 탄력적이어야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취지가 법에 대한 엄격한 해석으로 인하여 한국에서는 공급업체들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무관심할 것을 요구 받고, 그래야만 불법파견 내지 부당한 관여에 대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모든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지속 가능한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인권 및 환경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궁극의 목표와 배치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테세우스는 위와 같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악행을 듣고 이 악당의 여인숙에 들어가서 그를 똑같은 방식으로, 침대 밖으로 튀어나온 머리를 잘라서 처단했고 위대한 업적을 쌓은 영웅으로 알려져 주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아테네에 입성하게 된다.

ESG 그리고 공급망의 탄력적 관리라고 하는 새로운 변화, 코로나로 인해 더 빨리 찾아온 변화의 시대,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의 시대에서는 똑같은 운영 방식이나 똑같은 문제 처리 방식이 아니라 적어도 변화에 맞추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법을 집행함에 있어 또 그 법을 해석, 적용함에 있어 그 누구도 프로크루스테스 같은 악당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그 어떤 기업이나 시민, 노동자들을 비롯한 어떠한 이해 관계 당사자들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혀지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박정택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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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택 변호사는…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3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24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공군 법무관을 지냈고 1998년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몸담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LLM 과정을 마쳤다. 전문 분야는 인사, 노무, ESG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