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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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가 세 분기만에 또다시 역성장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경제대국들이 빠른 속도로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행보다.

일본 내각부는 2021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연율 환산 3.9% 감소했다고 지난달 8일 확정 발표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한 작년 2분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인 -28.6%를 기록했다. 3분기와 4분기 각각 22.9%, 11.6% 성장하면서 회복세를 타나 싶더니 또다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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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평시 상태 21일뿐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은 것은 코로나19의 장기화다. 지난 1월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2번째 긴급사태를 선포했다. 3월 중순 긴급사태를 잠시 해제했지만 확진자수가 다시 급증하자 4월말 또다시 3번째 긴급사태를 선포했다.올들어 긴급사태와 만연방지 대책 등 특별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평시는 21일에 불과하다.

일본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비가 회복되려야 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작년 4~5월 첫번째 긴급사태로 6조4000억엔(약 65조원), 올해 1~3월 두번째 긴급사태로 6조3000억엔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4월25일 도쿄 등 4개 지역을 대상으로 선포한 3번째 긴급사태는 현재 대상지역이 10곳으로, 기간은 6월20일까지로 한달 이상 늘어났다. 이 때문에 일본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4.8%로 11년만에 역성장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일본 경제가 4.0%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해외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지난 5월3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긴급사태 선언이 지속되고 있고 백신 접종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서 늦다"며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지난 3월의 2.7%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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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대학의 자료 집계 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6월8일 현재 일본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11.5%로 주요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OECD는 세계 경제가 코로나19의 충격에서부터 회복되고 있다며 세계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5.6%에서 5.8%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6.9%) 유럽연합(EU·4.3%), 영국(7.2%), 중국(8.5%) 등 주요국의 예상치도 모두 일본을 크게 웃돈다. 일본의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주요 7개국(G7) 꼴찌, OECD 회원국 37개국 중 36위다.

미국 경제가 올 상반기면 코로나19 이전인 19년말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일본은 올 하반기에나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불황을 겪는 일본으로서는 뼈아픈 타격이 아닐 수 없다.

1994년 이후 26년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6번을 제외하고 2%를 밑돌았다. 5번은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금액(명목) 기준으로도 올 1분기 GDP는 534조엔(약 5532조원)으로 1997년의 543조5000억엔을 밑돌고 있다.

◇35년째 물가상승률 2% 미만

물가 또한 1985년 이후 한 차례도 2%를 넘은 적이 없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15년 물가를 100으로 했을때 올해 4월의 일본 물가는 99.6이었다.

급여 수준에서도 일본의 장기불황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달 28일 일본 후생노동성은 2020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직장인 1인당 월 평균 급여가 31만8081엔(약 322만6391원)으로 1년전보다 1.5% 줄었다고 발표했다. 일본인의 월급이 줄어든 건 2012년 이후 8년 만이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에 따르면 올해 대기업의 평균 임금인상률은 1.82%다. 대기업 임금인상률이 2%를 밑돈 것 역시 아베노믹스(아베 정권의 대규모 경기부양책)가 시작된 2013년 이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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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수준은 일본 GDP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소비와 직결된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소비가 늘지 않아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기업실적이 악화돼 다시 급여가 하향압력을 받는 악순환(디플레이션)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경제가 30년간 골골대는 동안 세계 시장에서의 위상은 크게 추락했다. 1990년 도쿄증시의 시가총액은 2조9000억달러(약 3197조원)로 세계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31.2%를 차지했다. 3조1000억달러(33.0%)의 미국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지난 30년 동안 도쿄증시의 시총은 7조4000억달러로 늘었지만,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8%로 쪼그라들었다. 그 사이 미국증시의 시총은 45조5000억달러로 불어났고,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0%로 늘었다.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GAFA)로 대표되는 미국 정보기술(IT) 5대 기업의 시총이 도쿄증시 1부 전체를 넘어섰다.

세계 시총 상위 1000대 기업의 숫자도 1990년까지는 일본이 341개사로 274개사의 미국보다 많았지만 현재는 77개사와 417개사로 상황이 바뀌었다. 미래도 밝지 않다. 650개에 달하는 세계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비상장 신흥기업) 가운데 일본 기업은 5곳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지긋지긋한 불황을 한방에 떨쳐버릴 '올림픽 특수'를 기대했다. 2017년 4월 도쿄도는 대회 참가자 및 관중의 소비지출에 의한 경제파급 효과가 2079억엔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3월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해외 관중을 받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올림픽 특수도 물 건너갔다.

국내 관객 만으로 올림픽을 개최하더라도 일본은 경제부흥은 커녕 막대한 비용부담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디지털·탈석탄화에 정책 총동원

작년 9월 출범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디지털화와 탈석탄화를 정권의 핵심 정책으로 내걸었다. 디지털화와 탈석탄화는 코로나19가 노출시킨 일본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양대 과제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지난 18일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호네후토방침)을 확정했다. 호네후토방침은 일본 정부의 내년도 경제정책과 예산편성의 방향을 미리 읽을 수 있는 지표 역할을 한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를 '국제전략물자'로 지정하고 관련 지원을 경쟁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현재 일본 정부의 반도체 지원기금 규모는 2조엔이다. 반면 유럽은 1450억유로(약 19조엔), 미국은 390억달러(약 4조3000억엔)을 지원할 방침이다. 특히 반도체의 6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첨단 반도체 제조거점을 일본에 유치하는데 전력을 다한다고 명시했다.

탈석탄화 실현을 위해서는 해상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40년까지 전체 전력의 60~7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현재 발전능력이 1만4000㎾ 규모인 해상 풍력발전설비를 2030년까지 1000만㎾, 2040년까지 원자력발전소 40기 규모인 3000만~4500만㎾로 늘리기로 했다.

화석연료의 대체 수단으로 기대를 모으는 수소 산업을 육성하는데도 정책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현재 ㎏당 1100엔인 수소 가격을 2030년까지 330엔, 장기적으로 220엔까지 낮춘다는 목표를 세웠다. 차량용 수소스테이션도 2030년까지 현재의 6배인 1000기로 늘리기로 했다.

2035년까지 모든 신차를 친환경차로 교체하기 위해 2030년까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용 급속충전기 3만기, 충전설비 15만기를 갖출 계획이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능력 역시 1억㎾ 규모로 늘리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