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인플레 공포, 거대기술주를 덮치다
10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의 관심은 인플레이션에 쏠렸습니다. 이는 잠자던 금리를 자극했습니다. 이에 지난 7일 월가를 놀라게 한 4월 고용 충격에도 비교적 차분했던 증시는 이날 장이 열리자마자 요동쳤습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에 취약한 기술주가 줄줄이 급락했고, 나스닥은 시간이 갈수록 하락폭이 커졌습니다. 경기민감주 선방 속에 다우는 한 때 300포인트까지 올라 3만5000을 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장 막판 몰아닥친 거센 매도세까지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다우 지수는 0.1% 하락한 3만4742.82로 마감됐습니다. S&P 500지수는 1.04% 떨어졌고 나스닥은 무려 2.55% 폭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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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움직임에서 드러나듯 이날 시장엔 거센 '리플레이션 트레이드'(경기 회복 및 물가 상승 수혜주를 사는 것) 물결이 몰아쳤습니다.

대표적 경기순환주인 3M은 2% 이상 올랐고 P&G외 존슨앤드존슨, 버라이즌, 하니웰 등도 1% 이상 상승했습니다. 이날 장초반에는 S&P 500 지수 구성종목의 34%가 52주 신고가 기록을 세울 정도였습니다.

반면 페이스북이 4.11%, 아마존이 3.07% 폭락하는 등 FAAM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모기업 알파벳) 주식은 모두 2% 이상 떨어졌습니다. 테슬라가 6.4% 폭락했고, 퀄컴 램리서치 등 반도체주도 6% 이상 급락했습니다. 스퀘어 플러그파워 등 고평가 기술주들은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들을 대량 보유한 아크인베스트의 이노베이션 ETF(ARKK)은 이날 하루만 5.23% 급락해 작년 11월 이후 최저로 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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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를 놀라게 한 4월 고용 부진은 일시적일 것이란 게 컨센서스입니다. 4월 신규고용 수치가 예상치인 100만개에 훨씬 못미치는 26만6000개에 그친 것은 기업의 구인 수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급(일하려는 근로자 부족)과 데이터 문제(팬데믹으로 부정확해진 계절조정 등) 등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미 언론에 따르면 현재 실업자는 주정부의 주당 실업급여 평균 318달러와 연방정부 추가 실업급여 300달러를 더해 주당 618달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간당 15달러씩 하루 8시간, 일주일 5일 일해 버는 돈 600달러보다 많습니다. 연방정부 실업급여 지급이 종료되는 9월까지 일자리 회복세가 예상보다 지연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일시적이더라도 이런 고용 회복의 지연은 미 중앙은행(Fed)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시기를 좀 더 늦출 수 있습니다. 이날 시카고연방은행의 찰스 에반스 총재는 CNBC에서 "4월 고용은 놀라운 수준이었지만 이례적 상황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경제를 다시 재개하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성장통을 경험하고 있고 우리는 앞으로 더 좋은 고용 지표를 얻게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테이퍼링에 대해 "고용과 물가 데이터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봐야 한다. 테이퍼링 조건이 되려면 상당기간(It will be a while)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인플레에 대해선 "Fed는 인플레 목표(2%)를 적당히 넘어서는 걸 수용할 공간이 있다. 2.5%는 나를 걱정하지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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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인플레이션 자극 우려로 진화됐습니다. 미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괜찮은데, Fed는 지속적으로 더 많은 돈을 꾸준히 투입하겠다는 뜻이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4월 고용 데이터가 나온 뒤 미 달러는 지난 10주 동안 최저 수준(ICE달러인덱스 90.0)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는 급등중인 원자재 가격을 부채질했습니다. 구리는 t당 1만 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로 치달았고 철강 가격은 이날 장중 10% 이상 치솟았습니다. 목재, 옥수수부터 중고차까지 모두 급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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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지난 주말 사이버 공격으로 미국 최대 송유관 운영사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의 시스템이 마비됐다는 소식에 국제유가도 한 때 추가 급등했습니다. (유가는 이번주 중 복구될 것이란 소식에 결국 보합세로 마감됐습니다. 또 장 막판 증시 급락에 원자재 가격도 약세로 돌아섰습니다. 목재는 13일 연속 상승세를 마감하고 하락했습니다.)

패스트푸드 체인인 치폴레가 이날 저임금에 항의하는 직원 파업에 대해 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올리겠다고 발표하고, 맥도널드에서도 15개 도시에서 비슷한 형태의 파업이 벌어지고 있는 점도 인플레이션 우려를 부채질했습니다.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는 임금까지 꿈틀댈 수 있으니까요.

이날 5년 기대 인플레이션과 10년물 물가연동국채(TIPS) 수익률은 2011년과 2013년 이후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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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연방은행이 이날 발표한 소비자 기대 조사 결과에서는 향후 1년간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3월 3.2%에서 4월 3.4%로 상승했습니다. 이는 2013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뉴욕연방은행은 가계에서 주택, 렌트 등에서 눈에 띄는 물가 상승을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블룸버그 기고문을 통해 "기준금리가 연 4.5%까지 갈 수도 있다. 매우 높게 들릴 있지만, 가깝게는 금융위기 때도 5.25%까지 갔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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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든 일들은 금리를 자극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고용 충격으로 잠깐 연 1.4% 후반까지 떨어졌던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이날 한 때 1.608%까지 올랐습니다. 오는 12일 발표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13일 공급자물가지수(PPI) 발표를 앞두고 물가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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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거대기술주의 폭락 원인에는 씨티(citi)에서 내놓은 보고서도 있었습니다. 씨티의 제이슨 바즈넷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페이스북과 구글(알파벳)에 대해 "투자자들이 광고 시장의 성장 잠재력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온라인 광고 시장의 성장 궤적은 이들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않다"며 투자등급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췄습니다. 지난 6년 동안 미국의 광고 지출은 개인소비지출(PCE)의 1.6% 수준에서 유지되어왔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페이스북과 알파벳의 성장은 올해 후반부터 느려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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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스트랫은 이날 보고서에서 "기술주를 '중립'으로, FANG에 대해선 '매도'(Underweight)로 투자등급을 낮췄습니다. 대신 엑손모빌과 헬리버튼, 뱅크오브뉴욕멜론, GE 등 팬데믹으로 피해를 봤던 주식들을 추천했습니다. 펀드스트랫의 톰 리 설립자도 "빅테크의 부진이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골드만삭스는 FAAMG에 대해 굉장한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 바이든 행정부의 법인세 및 자본이득세 인상 계획, 반독점 조사 등이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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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코스틴 수석전략가는 법인세가 28%로 높아지면 FAAMG의 이익은 컨센서스 대비 약 9%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또 자본이득세가 두 배로 오르면 연말께 부자들이 기술주 매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세율이 오르기 전에 차익을 챙길 것이란 얘기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말까지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 1.9%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코스틴 전략가는 "작년 11월부터 3월까지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할 때 FAAMG 수익률은 S&P 500지수에 비해 약 7%포인트 낮았다. 올 하반기에 금리가 비슷하게 오르면 FAAMG 수익률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