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전자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중국 내 신흥 반도체 업체를 대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이 공급망과 자금줄을 쥐고 압박을 강화하자 자립하기 위한 활로 찾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화웨이 산하 허블테크놀로지인베스트먼트가 지난 3개월간 반도체 장비 회사 3곳의 지분 일부를 잇달아 인수했다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를 두고 화웨이의 '탈미국' 전략에 변화가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크 리 홍콩 번스타인 소속 반도체 애널리스트는 "예전에 허블테크놀로지인베스트먼트는 화웨이에 직접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는 회사에만 투자했다"면서 "하지만 최근 2~3개월의 투자를 보면 반도체를 직접 공급할 수 있는 회사보다는 반도체를 만드는 장비 회사에 투자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는 2019년 5월 미국 기업들에 대한 화웨이 수출 승인으로 시작해 지난 5월에는 해외 기업들도 미국 기술과 부품을 이용한 제품을 화웨이에 수출할 때 미 상무부의 승인을 받도록 확대됐다. 지난 8월에는 미국의 기술과 부품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한 제품 일반에 대해 화웨이 수출 때 미국의 승인을 받도록 더욱 확대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반도체 자립을 위한 행보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 계획에는 미국 장비 없이 반도체 칩을 생산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한 반도체업체 고위 관계자는 "화웨이는 투자를 통해 미국 회사들을 확실하게 대체한다는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허블테크놀로지인베스트먼트는 지난 9월 중국과학원의 지원을 받는 반도체 장비업체 스카이버스의 지분 3.3%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3300만 위안(약 54억원)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제재로 뚝 끊긴 반도체 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전략적인 투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스카이버스는 미국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KLA와 비슷한 제품을 제조한다. 미 텍사스주에 있는 반도체 기업 NI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텔리디네테크놀로지스와 경쟁하고 있다. 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 행정부의 제재로 화웨이는 더는 KLA, NI 등과 거래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월 허블테크놀로지인베스트먼트는 또 다른 중국 반도체 장비 업체와 반도체 소재 관련 업체에 투자했다. 투자 규모는 총 1300만 위안(약 21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반도체 원판(웨이퍼)을 깎는 기계와 포토레지스트(반도체 회로를 그릴 때 사용하는 감광액)를 씻어내는 기계를 생산하는 닝보알세미 지분 6.2%를 인수했다. 닝보알세미의 제품은 중국 2위 반도체 장비업체 AMEC, 다국적 기업 램리서치, 일본 도쿄일레트릭과 비슷한 회사다.

허블테크놀로지인베스트먼트는 이어 에피월드인터내셔널의 지분 4.6%를 인수했다. 고성능 반도체에 쓰이는 실리콘카바이드를 검사하는 도구를 생산하는 업체다.

리 애널리스트는 "이런 화웨이의 투자는 자국 반도체 공급망의 자립을 위한 행보하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투자를 받은 회사들이 경쟁력이 떨어지는 작은 회사여서 이 같은 자립 전략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