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을 판매한 뒤 불량 제품이 반송될 위험이 없다. 물류망이 꽉 막혀도 언제든 상품을 전달할 수 있다. 유통업체들의 한계비용을 제로에 가깝게 낮추며 오랜 꿈을 현실로 바꾼 시장이 등장했다. 3차원(3D) 가상세계인 메타버스다.

메타버스를 향한 미국 소비재 기업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아바타가 오가는 매장을 개설하고 이곳에서 아바타를 위한 상품을 판매한다. 가상과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제품도 출시한다. 기업들의 메타버스 활동 반경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나이키·치폴레, 불량·반품 없는 '메타버스 매장' 키운다

○메타버스 매장 확대하는 미국 기업들

24일 로블록스에 따르면 패션기업 포에버21의 메타버스 상점인 숍시티를 다녀간 사용자는 22만 명을 넘었다. 지난해 12월 14일 이 상점의 문을 열면서 포에버21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포에버21의 5층짜리 메타버스 매장에선 로블록스 화폐인 로벅스를 이용해 디지털 의류를 사고 화장을 할 수 있다. 최고 인기 제품은 검은색 비니다. 가격은 61로벅스로 0.75달러 정도다. 올해 말까지 100만 개를 판매하는 게 목표다. 메타버스 기업인 버추얼브랜드그룹의 저스틴 호크버그 최고경영자(CEO)는 “포에버21의 전체 손익계산서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몇 가지 이점이 있다”며 “한 개를 팔든, 10억 개를 팔든 한계비용이 없다”고 했다. 원자재는 물론 반품이나 배송 비용이 들지 않는 특수 시장이라는 의미다.

포에버21은 연말에 로블록스 인기 상품인 비니를 실제 상품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자신과 아바타를 똑같이 꾸미면서 동질감을 높이는 ‘디지털트윈’ 소비 심리를 겨냥한 것이다.

○JP모간, 메타버스 경제 ‘1조달러’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도 로블록스에 진출했다. 나이키월드를 찾으면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가 고객을 맞이한다. 지난해 12월 디지털 운동화 기업인 아티팩트(RTFKT)를 인수한 나이키는 이달 초 재판매 플랫폼인 스톡엑스를 고발했다. 허가받지 않은 나이키 대체불가능토큰(NFT)을 판매해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나이키가 메타버스 상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메타버스 등 게임 속 광고 시장은 2020년 52억9000만달러에서 2027년 184억1000만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엔 메타버스를 찾는 기업들의 활동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 반스는 로블록스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반스월드를 열었다. 지난해 11월 이후 사용자는 500만 명을 넘었다. 페라리는 지난해 7월 신형 스포츠카 296GTB의 메타버스 모델을 포트나이트 게임에서 선보였다. 통신회사 버라이즌도 서비스 홍보를 위해 포트나이트를 찾았다. 멕시코 음식점 체인 치폴레는 매년 지급하던 무료 쿠폰 행사를 로블록스 속 가상 레스토랑에서 진행했다. 아바타가 치폴레 가상 매장을 찾아 이벤트에 참여하면 부리토를 실제 살 수 있는 쿠폰을 지급했다.

JP모간은 메타버스에서 창출되는 경제 규모가 연 1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매년 가상상품 판매금액만 54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온라인 음악 시장의 두 배에 달한다. 플랫폼 기업들의 메타버스 투자도 늘고 있다. 메타는 10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메타버스에 러브콜을 보내는 기업이 늘었지만 가치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레스터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성인 중 메타버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데 관심 있는 사람은 23% 정도다. 영국 성인 중 메타버스 공간에 시간을 쓰겠다고 답한 사람은 17%뿐이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