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보다 먼저 美 공략…日 간장기업 '텐배거' 되다
1980년대 미국인들은 ‘일본의 공습’에 공포를 느꼈다. 도요타 혼다 마쓰시타 소니 등 일본 기업이 자동차와 전자산업을 넘어 할리우드 영화산업까지 치고 들어왔다. 하지만 일본 기업사에서 미국 진출의 원조는 이들이 아니다. 간장회사 깃코만은 1950년대 미국에서 마케팅을 시작하고, 1973년 현지 공장을 세웠다.

도요타보다 먼저 美 공략…日 간장기업 '텐배거' 되다
에도시대 때 시작한 간장사업을 미국과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대규모 비즈니스로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도요타보다 빨리 미국 시장을 공략한 깃코만 주가는 최근 10년간 10배 넘게 뛰었다. 글로벌화, 현지화를 넘어 새로운 음식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끊임없이 ‘세팅’한 결과다. 간장회사 투자가 10년 만에 텐배거의 결실로 돌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7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깃코만(종목번호 2801)은 9380엔에 장을 마쳤다. 깃코만은 지난달 29일 처음으로 1만엔(1만140엔)을 넘기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깃코만은 2012년 이후 10년 동안 주가가 10배 올랐다. 같은 기간 닛케이225지수는 3배 올랐다. 깃코만은 시가총액 1조8186억엔으로 일본 증시 91위를 기록 중이다.

깃코만은 1950년대 일본 간장 시장이 정체되자 해외로 방향을 틀었다. 2차대전 이후 일본에 온 미국인이 간장으로 양념한 요리를 즐기는 데 착안했다. 깃코만은 간장이 어디에나 쓸 수 있는 조미료라고 광고했다. 특히 스테이크와 궁합이 좋다고 강조했다. 미국인들은 바비큐 파티에서 간장 양념한 고기를 구워 데리야키로 불렀다. 데리야키 소스는 히트상품이 됐다. 초밥의 대중화도 깃코만의 성장을 가속화했다. 깃코만의 간장 병은 코카콜라 병과 함께 가장 성공한 산업디자인 제품의 자리에 올랐다. 2012년 이후에는 유전자 변형 식품을 쓰지 않는 친환경, 초신선 등을 강조한 ‘언제나 신선’ 시리즈 등을 내놓으며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매출을 크게 늘렸다.

깃코만의 해외 매출 비중은 65%(지난해 3월 말 기준)다. 이 중 30%가량이 간장에서 나온다. 깃코만의 간장은 1974년부터 2020년까지 해외 시장에서 연평균 7.3% 성장했다. 깃코만은 지난해(2021년 4월~2022년 3월)까지 9년 연속 사상 최고 이익을 달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매출은 4938억엔, 영업이익은 482억엔으로 추정했다.

美 사로잡은 '깃코만 간장'…유럽시장 공략해 매출 성장

도요타보다 먼저 美 공략…日 간장기업 '텐배거' 되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의 한 슈퍼마켓. 대학생이었던 모기 유자부로(깃코만 명예회장)가 아르바이트로 간장으로 양념한 고기를 열심히 굽고 있다. 그가 구운 스테이크를 시식한 미국인들은 곧 옆에 놓여진 간장병을 하나씩 손에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스테이크는 소금에나 찍어 먹던 미국인에게 간장맛 고기는 신선했다.

모기의 생각대로 깃코만의 간장은 데리야키 소스 등으로 발전해 현재 북미에서만 2000억엔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사업으로 성장했다.

깃코만은 1950년대 일본 간장시장이 정체 상태에 빠지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깃코만은 간장이 일식에만 쓰는 조미료가 아니라 어디에나 사용할 수 있는 조미료라고 강조하며 광고했다. 슈퍼마켓의 시식코너를 만들어 간장을 알린 것이 적중했다. 이후에도 깃코만은 간장과 다른 소스 등을 내놓으며 조합할 수 있는 요리를 함께 선보이는 성공 공식을 이어가고 있다.

깃코만의 특이한 점은 이 회사가 가족경영을 이어오는 회사란 점이다. 깃코만은 에도시대 때 간장을 제조하던 양조가 가문 여덟 곳이 100년 전 모여 설립한 회사가 전신이다. 현재 호리키리 노리아키 사장은 여덟 가문의 13대째다.

다만 불문율이 있다. 한 세대에 한 가문당 한 명만 깃코만에 입사가 가능하며, 창업가문 출신이라고 해서 임원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각 가문에서는 ‘사장감’이 될 수 있을 만한 우수한 인재를 입사시키고, 그중에서도 경쟁을 통해 지명위원회에서 사장으로 지명된 자만 사장에 오를 수 있다. 이 때문에 창업가문이 아닌 사장도 나올 수 있고 실제 과거 사장 중 2명이 창업가문 출신이 아니었다. 경쟁을 거친 깃코만의 사장들은 우수한 인재라는 평이다. 깃코만의 명예회장이자 과거 사장을 지낸 모기 유자부로만 하더라도 일본인 최초로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한 인물이다.

증권가에서도 깃코만에 성장 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해외 매출의 70%가 북미지역에서 나오는데 유럽 식탁에도 깃코만의 간장이 침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외 매출에서 유럽 시장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유럽 시장에서도 미국 시장만큼의 성장을 보여준다면 실적 성장이 더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원재료 부담 역시 14년 만에 간장 가격을 인상해 상쇄할 수 있다고 본다.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집콕’으로 유럽의 가정에도 깃코만의 간장이 더 팔리기 시작했다”며 “이미 일본과 미국에서 간장 가격 인상을 발표했기 때문에 원가 부담도 상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