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사진=AFP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뜨거웠던 노동시장이 식고 있고 불타던 소비심리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적자재정에 의존한 정부 돈풀기 시대도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때마침 스위스 스웨덴에서 시작된 피벗은 곧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도 고금리 장기화 국면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문제는 예상보다 느리게 둔화하는 인플레이션입니다. 자칫하면 다시 튀어오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주간을 맞아 인플레이션을 잡는 킬러를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일정과 이슈를 살펴보겠습니다.

바닥난 초과저축

사라진 'H·O·P·E'…뒤집힌 미국 [美증시 주간전망]
미국의 탄탄한 소비를 떠받치던 자금줄은 팬데믹 시기 쌓은 가계의 초과저축이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돈을 쓸 곳이 없던 데다 미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으로 여윳돈이 계속 늘었습니다.

그런데 이 초과저축이 바닥났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은 팬데믹 이후 미국 가계가 축적한 초과저축액이 올 3월 기준으로 마이너스로 전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가계는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3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초과저축액을 축적했습니다. 그 액수는 2021년 8월에 2조1000억달러(약 2850조원)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후 월 평균 700억달러로 줄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월 850억달러로 감소 속도가 빨라지더니 3월에 초과저축이 사라진 것입니다.
사라진 'H·O·P·E'…뒤집힌 미국 [美증시 주간전망]
샌프란시스코 연은은 "초과저축은 미국 가계의 전반적인 재정 건전성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왔고 소비자 지출은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지난 2년간 견조한 성장세를 이끌어왔다"고 평가했습니다.

초과저축이 사라진 뒤 미국의 소비는 어떨까요. 그 숫자는 '슈퍼데이'인 15일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4월 CPI와 같은날 나오는 4월 소매판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장에선 전월대비 0.4% 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3월(0.7%)에 비해 증가율은 둔화했습니다. 그러나 소매판매가 계속 플러스를 유지하면 여윳돈이 줄었더라도 소비가 급격히 꺾이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베버리지가 보여준 고용둔화

사진=로이터
사진=로이터
샌프란시스코 연은도 초과저축이 사라져도 당분간 견조한 소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초과저축은 견조한 소비를 이끈 여러 배경 중 하나에 불과하고 소비를 끌어줄 다른 요인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연은은 강력한 노동시장을 소비의 대표적 우군으로 꼽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역사적 최저 수준인 실업률과 평균 이상의 임금 증가 속도, 월별 신규 일자리라 꾸준히 20만개 가량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사라진 'H·O·P·E'…뒤집힌 미국 [美증시 주간전망]
그러나 이달 초 나온 4월 고용보고서는 노동시장도 불사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신규 일자리 수가 조금씩 줄고 있고 임금 상승률도 둔화하고 있습니다. 실업률이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빈 일자리 비율인 구인율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H·O·P·E'…뒤집힌 미국 [美증시 주간전망]
미국형 베버리지 곡선이 구인율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베버리지 곡선은 노동공급을 보여주는 실업률과 노동수요를 나타내는 빈구인율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점을 입증한 곡선입니다. 영국의 사회복지 제도를 설계한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실업률 상승없이 구인율을 낮추는 연착륙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바람대로 그 시나리오 가능성은 커지고 있습니다.
사진=EPA
사진=EPA
미국 노동시장의 구인율이 꾸준히 하락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근접해가고 있습니다. 당장 실업률이 크게 오르지 않으면서 구인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노동시장이 식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롬 파월 의장도 지난 FOMC에서 "노동시장이 둔화하면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택시장 탓에 무너진 'H·O·P·E' 이론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인플레이션을 부추겨온 미국 정부의 재정효과도 반감되고 있습니다. 정부지출이 줄고 재정으로 만든 공공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와 4월 고용보고서에서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세수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지난달 미국의 재정흑자 규모는 2100억달러였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증가한 수치입니다.

물론 고금리로 인해 미국 정부의 부채 부담은 여전히 높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2024 회계연도 중 올 4월까지 미국 정부가 낸 채무 이자 비용은 6240억 달러였습니다. 2023년에 비해 36% 증가했습니다.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미국 정부에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사진=AP
사진=AP
개인들은 고금리 직격탄을 피해가고 있습니다. 변동금리인 오토론과 카드론 비중이 많은 소비자들은 이자 부담이 늘고 있지만 고정금리인 주택담보대출자들은 이자 부담이 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집으로 이사하려면 현재 금리보다 두 배 높은 신규 대출금리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이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저금리 주택대출로 살고 있는 기존 주택이 '황금수갑'이 돼 매물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사라진 'H·O·P·E'…뒤집힌 미국 [美증시 주간전망]
자연스레 임차 수요로 몰리고 있습니다. 고금리와 집 보험료 상승 등으로 집 주인들의 가상 렌트비인 '자가 주거비'(OER)도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CPI 통계보다 12~18개월 가량 선행하는 민간 주거비 통계는 지난해 초부터 둔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말부터 주거비 상승률이 둔화할 것으로 봤지만 계속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빨라야 올 3분기부터 주거비가 둔화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 샌들러가 개발한 'H·O·P·E 이론'에 따르면 경기 침체나 둔화는 주택시장(Housing)부터 시작합니다. 이어 기업의 신규 주문(Orders)과 기업 이익(Profits), 고용(Employment) 순서로 경기침체가 진행됩니다.

하지만 미국에선 그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고용시장이 둔화하고 기업의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영향을 먼저 받고 있습니다. 아직 기업 이익과 주택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경기 상황은 침체가 아니기 때문에 'H·O·P·E 이론'도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0.3%가 아니라 0.1%가 커트라인

사진=UPI
사진=UPI
15일에 나오는 4월 CPI는 둔화할 것으로 시장에선 보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패널들은 4월 CPI는 전월대비 0.4%, 전년동기대비 3.4% 상승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3월엔 전월대비 0.4% 상승, 전년 동기대비 3.5% 상승이었는데 같거나 약간 둔화한 수준입니다.

4월 근원 CPI는 전월보다 0.3% 상승,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3월 수치인 0.4% 상승, 3.8% 상승에 비해 상승률이 낮아졌습니다.
사라진 'H·O·P·E'…뒤집힌 미국 [美증시 주간전망]
컨센서스대로 나온다면 시장은 다소 안도할 수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안심할 수만 없습니다.
지난해 4월 이전까지 CPI 상승률은 높았습니다. 전년 동기대비 상승률이 5%대에서 지난해 4월 4.9%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5월에 4.1%로 뚝 떨어졌고 이후 3%대를 유지했습니다. 올 5월부터 CPI의 기저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사라진 'H·O·P·E'…뒤집힌 미국 [美증시 주간전망]
Fed의 목표치인 2%를 달성하려면 이젠 전월대비 0.3% 상승이 아니라 0.1%가 돼야 합니다. '라스타 마일' 구간을 통과할 수 있는 커트라인은 0.1%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려면 인플레이션 완화를 막는 '라스트 래그'의 주범인 주거비와 서비스 요금이 확실히 떨어져야 합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