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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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국가들이 러시아의 동결된 국가 자산에서 얻은 이익으로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매년 30억유로(약 4조4000억원)가량을 지원하는 데에 잠정 합의했다. 미국에 이어 유럽도 러시아 동결 자산을 활용한 자금 지원에 박차를 가하며 우크라이나가 전선 유지에 힘을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27개국 EU 대사들은 벨기에의 국제 예탁결제기관 유로클리어에 보관된 약 1900억 유로(약 280조원)에 달하는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에서 얻는 약 30억유로의 수익을 사용해 우크라이나를 위한 무기를 공동 구매하는 데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주요 7개국(G7)과 EU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동결한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은 약 2600억유로(약 380조원)에 달한다. 이 중 3분의 2 이상이 증권과 현금 형태로 벨기에의 국제 예탁결제기관 유로클리어에 묶여 있다. 유로클리어는 러시아 동결 자금을 재투자하는 등 운용 과정에서 연간 약 50억유로에 이르는 '횡재 수익'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상반기 EU 의장국인 벨기에는 이날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EU 대사들은 러시아의 고정 자산에서 발생하는 특별 수입에 관한 조치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돈은 러시아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무장하거나 재건하는 데에 사용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X에서 "자금 사용에 있어서는 우크라이나와 유럽 전체를 더 살기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잠정 합의안에 따르면 EU는 유로클리어가 러시아 동결 자산을 운용해 얻은 수익의 90%는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EU특별기금인 유럽평화기금(EPF)으로, 10%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자금을 조달하지 않기를 원하는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의 입장을 고려해 자금 사용처를 나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대사급 회의에서 타결된 잠정 합의안은 세부 검토를 거쳐 이르면 오는 14일 EU 재무장관 회의에서 공식 논의될 전망이다. EU는 7월부터 집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U 집행위는 유로클리어가 연간 약 30억 유로의 수익을 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동결자금 수익금은 2년마다 EU 자금으로 이전될 예정이다, EU는 지난 2월부터 2027년까지 역내 자산에서 발생하는 횡재 수익이 총 150~200억유로(약 22조~29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번 잠정 합의는 지난 2월 말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동결자산 운용 수익을 우크라이나 지원금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 지 두 달 만에 이뤄졌다. EU 회원국들은 합의 과정에서 벨기에가 25%에 달하는 과도한 법인세를 부과한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벨기에의 높은 세율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줄어든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벨기에는 유로클리어 관리 수수료를 3%에서 0.3%로 인하하고, 내년도 세수를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공동 기금 등에 투입하는 방안으로 절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은 미국과 우크라이나 측이 러시아 동결 자산 전체를 압류하라는 요구를 기각했으나, 대신 횡재 수익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 및 프랑스 등은 유로화 안전성 훼손, 국제법적 근거 미비 등을 이유로 동결 자금 원금을 건드리는 방안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