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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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미국 주식 시장에서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미국 증시가 고점을 찍자 차익 실현한 뒤 채권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겠다는 취지다. 연기금이 주식 시장을 떠나면서 미국 증시 약세론이 더 불붙는 모양새다.

美 연기금, 주식서 손 떼다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들어 미국 대형 연기금들이 주식 시장에서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주 정부와 지방 정부 기금 등이 주식에서 사모펀드, 회사채 등으로 투자금을 전환하는 '머니 무브'가 확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 최대 공적 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CalPERS·캘퍼스)은 250억달러 규모의 주식 투자금을 사모펀드(PEF)와 회사채로 전환할 계획이다. 캘퍼스는 지난 3월 포트폴리오 내 주식 투자 비중을 기존 42%에서 37%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캘퍼스는 사모펀드와 회사채 투자를 통해 향후 20년간 매년 7~8% 수익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찰, 소방관 등을 위해 2600억 달러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뉴욕주 공동퇴직기금(NYSCRF)은 최근 포트폴리오(자산 배분)에서 주식의 비중을 47%에서 39%로 줄였다. 주식 시장서 회수한 투자금은 PEF, 부동산 등에 투자할 방침이다.




800억달러 규모인 알래스카 영구기금(APFC)도 주식 비중을 줄였다. 2023회계연도 말 기준으로 자산의 36%였던 주식을 2025년까지 32%로 줄일 방침이다. 세 기금 모두 지난해 말 미국 내 연기금 주식 투자 비중 평균치(51.3%)를 밑도는 목표치를 설정했다.

미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연기금이 올해 3250억달러어치의 주식을 매각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지난해 기관투자가의 주식 매각 대금은 1910억달러로 집계됐다. 골드만삭스 멀티에셋 솔루션 공동 책임자 티모시 브라이드는 “주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연금 시스템의 장기적인 건전성 측면에서 좋은 징조”라고 설명했다.

일반 기업들도 주식 비중을 줄이는 모양새다. 생활용품업체 존슨앤드존슨은 확정급여형(DB형) 퇴직연금 포트폴리오에서 주식 비중을 2022년 62%에서 지난해 58%까지 줄였다. 항공우주 기업 RTX도 지난해 주식 투자 비중을 2022년 26%에서 지난해 말 19%까지 축소했다.

美 증시 약세론 불붙나

전문가들은 기관투자가가 주식 시장을 떠나는 요인으로 불안정성을 꼽았다. 지정학적 위험이 점차 확대되면서 주식 시장의 변동성도 커졌다. 목표 수익률만 넘겨도 되는 운용 규칙을 고려하면 위험도가 높은 주식을 오래 보유할 동기가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보험 컨설팅업체 밀리만은 WSJ에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뒤 연기금은 퇴직연금 부채를 감당하기 위해 현금 보유량을 늘려왔다”며 “투자 성향도 덜 공격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증시가 과열됐다는 우려도 확산했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S&P500의 주가수익비율(PER) 평균값은 약 24배에 육박했다. 5년 평균치(2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규정상 안정성을 추구해야 하는 연기금들이 주식 투자 수익을 포기하고 채권 시장에 눈을 돌렸다는 설명이다.

연기금이 주식 시장을 떠나며 미국 증시가 약세장에 진입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S&P500지수는 지난달 말까지 10.8% 상승했다. 하지만 이달 들어 4.7% 하락했다. 미 중앙은행(Fed)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지며 주식 투자 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도 연 4.5%를 넘어서며 채권에 대한 투자 매력도는 커지고 있다.


마커스 프램튼 APFC 투자 책임자는 “현재 미국 주식은 매우 비싸고 위험하다”라며 “채권에 투자해도 물가상승률(3%대)을 웃도는 수익(5%대)을 충분히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