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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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시에서 전력·기계업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기업 주가가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반도체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 주가가 횡보하는 것과 비교된다. 시장에서는 미국 정부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예정돼 있는 만큼 중후장대 산업의 실적 개선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0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에너지 설비 기업 이튼의 주가는 0.16% 오른 314.31달러에 마감했다. 최근 1개월간 이 회사의 주가는 7.40% 상승했다. 같은 기간 건설기계 제조업체 캐터필러와 운송장비 기업 트레인 테크놀로지의 주가도 각각 11.08%, 5.52% 올랐다. 최근 AI 테마가 주춤하며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한 달 간 3.38%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중후장대란 '무겁고 두텁고 길고 크다’는 의미로, 기계·에너지·건설 같은 전통적인 대형 산업을 말한다. AI를 앞세운 기술주가 증시를 주도하는 상황에서도 조용히 오름세를 이어왔다. 건설 중장비 종목으로 구성된 '글로벌X 슈퍼디비던드(티커: PAVE)' 상장지수펀드(ETF)는 올 들어서만 주가가 13.78% 상승했다. 인프라 기업 중심의 '미국 산업르네상스(AIRR)' ETF도 13.05% 올랐다. 올해 S&P500지수(8.81%)와 나스닥지수(9.51%) 상승률을 웃돌았다.

중후장대 기업의 실적이 빠르게 성장하며 안정적인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에너지 설비 기업 이튼은 지난해 4분기 매출액 59억6700만달러, 영업이익은 10억7500만달러를 거뒀다. 1년 전보다 각각 10.8%, 23.0% 늘어난 수치다. 건설장비 업체 캐터필러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32억26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4% 증가했다. 모빌리티 기업 파카 하니핀은 지난해 호실적에 힘입어 배당금 규모를 11.8% 높이기도 했다.

미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실적 상승의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은 지난 2021년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인프라투자법(IIJA)'을 통과시켰다. 오는 2032년까지 도로와 철도, 공항 같은 인프라 구축에 1조2000억달러(약 1638조원)를 투자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 미국의 인프라 건설 투자액은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미국 인프라 관련 투자액은 지난 2022년과 2023년 각각 34%, 12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IIJA에서 밝힌 1조2000억달러 투자금액 중 아직 발표되지 않은 프로젝트만 6400억달러에 달한다. 향후 수년간 관련 업종의 실적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이다. 김성한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정부의 인프라 투자 계획이 나온 이후 민간 기업들도 약 7000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했다"며 "지금까지 발표된 투자금액을 고려할 때 전력·인프라·기계 업종은 향후 1~2년간 시장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력·기계·인프라 관련주는 '미국 대선 리스크'도 적다는 평가다. 태양광은 한때 차세대 에너지로 꼽히며 관련주도 급등했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급락한 전례가 있다. 2차전지·전기차 업종도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언급하자 일제히 급락했다. 반면, 미국 내 인프라 투자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성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AI 열풍으로 전력 수요가 증가하며 전력 인프라 관련 투자 증가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여기에 정책적 지원까지 예정돼 있는 만큼 추가적인 상승 동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효성 기자 z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