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2032년까지 신차의 절반 이상을 전기차로 판매하도록 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신차의 약 3분의 2를 전기차로 판매해야 한다는 1년 전 제안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전기차 전환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노동계 목소리와 전기차 수요 둔화 등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전기차 비중 줄이고, 하이브리드 늘려

美 "8년 후 신차 절반 이상 전기차로 바꾼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20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의 ‘2027년 이후 모델에 대한 다중오염 배출 기준 최종 규칙’을 공개했다. 규칙에 따르면 자동차 제조사는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2032년까지 신차의 56%를 전기차로, 13% 이상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등 부분 전동화 차량으로 판매해야 한다. 이 규정은 2027~2032년 생산되는 승용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픽업트럭 등에 적용된다. 지난해 미국 전기차의 판매 비중은 전체 차량의 7.6%였다. EPA는 지난해 4월 2032년까지 신차의 67%를 전기차로 판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순수 전기차 대신 시장에서 인기인 하이브리드 차량의 판매 비중을 일부 반영했다.

기존 제안에선 2030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신차의 60%를 전기차로 판매해야 했지만 새 제안에서는 31~44%로 낮췄다. 하이브리드·가솔린·디젤 등 차량 판매 조합에 따라 전기차 최소 판매 비중은 31%로 낮아질 수도, 44%로 높아질 수도 있다. 알리 자이디 백악관 국가기후고문은 “유연성은 새로운 규칙의 강력한 특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 노동자들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찍힌 깨끗한 자동차와 트럭을 만들어 자동차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 반발에 친환경 일보 후퇴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전환 계획이 기존 제안에서 한발 물러선 것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노조의 반발 등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EPA가 지난해 엄격한 자동차 배출 규제안을 발표하자 숀 페인 미국자동차노조(UAW) 위원장은 “전기차 전환 우려로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에 대한 지지를 보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내연기관차보다 제조 공정이 단순한 전기차 공장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게 UAW 우려다. UAW는 이날 발표된 새 규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한 업계 우려도 이번 규정에 반영됐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동차업계 경영진과 딜러들은 최근 몇 년간 폭발적인 열기를 보인 미국 전기차 판매 속도가 둔화함에 따라 (규칙안) 시행 속도를 늦춰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전했다. 행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WSJ에 “자동차업계로부터 설득력 있는 정보를 받았다”며 “전기차 채택을 위해 시장에 더 많은 시간을 제공한다면 이 규칙이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는 올해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27% 늘어 작년 증가율 29%를 밑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기차의 판매량 증가율은 2021년 105%, 2022년 57%로 둔화하는 추세다.

포드·제너럴모터스(GM)·현대자동차그룹 등이 속한 미국 최대 자동차 단체인 자동차혁신연합은 이번 규칙에 대해 “2027~2030년 전기차 채택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합리적인 전동화 목표에 우선순위를 둔 올바른 결정”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이브리드 강자로 꼽히는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이번 규정을 준수하겠다며 “해당 의무가 실현되기 전에 경제성, 충전 인프라 및 공급망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