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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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간 지정학적 갈등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양국의 학술 협력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 경제 전문 매체 CNBC는 24일(현지시간) "1978년 시작된 이래 확장세를 이어오던 미·중 학술 협력은 양국 정부 간 경쟁 심화, 스파이 활동 우려 등을 이유로 후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례로 1980년대 생화학을 전공하기 위해 미국에 건너온 푸샹동 교수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지 30년 만에 파킨슨병 연구로 이름을 날렸지만, 현재는 중국의 한 대학교로 돌아간 상태다.

중국 대학과의 공동 연구 등에 관해 미국 당국의 조사를 받자 사임한 것이다. CNBC는 "푸 교수의 이야기는 미중 학술 협력 역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양국은 1979년 과학기술협력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외교관계를 정상화한 이후 첫 번째로 맺은 중요 협정이었다. 임산부의 엽산 섭취가 태아의 척추 기형을 예방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거나 사스(SARS) 바이러스가 퍼졌을 당시 신속 진단 및 테스트 제품을 개발한 것은 이 협력의 성과물로 꼽힌다.
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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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태양광을 통한 수소연료 생산 방법을 연구해내기도 했다. 해당 협정은 5년 주기로 연장돼 왔으나, 최근 존폐 위기에 몰렸다. 몇년 새 반도체 수출 통제 등으로 양국 관계가 급격히 악화된 탓이다. 올해 8월 27일 기한 만료를 앞두고 미 국무원이 6개월 연장 의사를 밝히자 학계에서는 "향후 협력 관계가 미궁에 빠졌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후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협정 갱신 여부에 대한 협의를 개시키로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당시 제정된 '차이나 이니셔티브'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차이나 이니셔티브'는 최신 기술 등에 관한 정보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지식재산권 관련 반(反)간첩법이다. 이를 근거로 미 국립보건원(NIH)은 "중국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은 교수진의 연방 자금 사용 위반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고, 미 법무부는 중국의 영업 비밀 침해와 인재 유출 등에 대해 수사를 벌여왔다. CNBC는 "해당 이니셔티브는 스파이를 적발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미국 학교의 중국계 과학자들에게는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라 2021년 기소됐던 강첸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기계공학 교수는 "미국 당국의 부당한 수사가 인재를 밀어내고 있다"며 "그것은 결국 미국의 과학 기업을 해치고 미국의 국가 경쟁력을 끌어내릴 것"이고 말했다. 이후 미국 검찰은 강첸 교수에 대한 기소를 전부 취하했다. 차이나 이니셔티브는 2022년 바이든 행정부에 의해 종료됐으나, 미국에서는 여전히 중국계 학자를 겨냥한 조사가 주(州)별로 잇따르고 있다. 중국 유학생들이 공립대학교 실험실 사용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플로리다주 등이 대표적이다.
2023년 11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사진=연합UPI
2023년 11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사진=연합UPI
또한 최근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중국 정부가 학생 단체를 통해 미국 대학 캠퍼스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며 법무부에 해당 학생 단체들을 외국 기관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했다. 학술 연구에서의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은 유학생이나 학자들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보건 과학 분야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을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빌라노바 대학교의 정치학자인 데보라 셀리그손은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 과학에 정말 해로운 일"이라며 "우리는 협력 감소로 인해 과학을 덜 '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논문 검색 사이트인 펍메드에 실린 논문들을 분석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 과학자들은 여전히 중국 과학자들과 가장 많은 논문을 공동 집필하고 있긴 하지만, 중국과 협력한 이력이 있는 과학자들의 연구 생산성과 영향력 등은 차이나 이니셔티브가 시작된 2019년 이후 감소세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 협력하는 미국 과학자들의 논문 피인용 횟수는 동기간 10% 줄어들었다. 해당 보고서는 조만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될 예정이다. PNAS는 올해 6월에는 "학자로서 미국이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낀다는 응답자가 4분의 3에 이른다"는 설문조사 보고서를 실었다.

한편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고위 관료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이 스파이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인공지능(AI) 핵심 기술을 훔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AI를 활용해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규모로 미국인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 및 비축하려 든다는 주장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