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사진=REUTERS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사진=REUTERS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과 영국의 중앙은행이 조기 금리 인하에 나설 거란 기대감이 시장에서 확산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물가 상승률이 눈에 띄게 개선된 데다 소비, 생산 등 유럽의 경제 지표가 악화하면서 완화적 통화 정책을 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FT에 따르면 시장에선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이 내년 6월쯤 첫 금리 인하에 나설 거란 전망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추가 긴축 가능성은 거의 제로(0)에 가깝게 낮아졌으며, 내년 중 이들 국가가 최소 3차례의 금리 인하를 단행할 거란 관측에 대한 확신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은 ECB와 영란은행의 피벗(pivot·통화 정책 전환) 시점을 각각 2024년 9월, 2025년 초로 제시했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금리 인하 논의와 관련해 “완전히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고,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 역시 “물가 상승 위험이 여전하다”고 언급하는 등 정책 결정자들은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자료=파이낸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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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새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뀐 건 경기 침체 우려가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올해 EU와 유로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8%(9월 전망치)에서 0.6%로 내려 잡았다. 영국의 소매판매(소비 지표·10월 기준)는 전월보다 0.3% 감소해 2021년 2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고, 유로존 산업생산(생산 지표·9월 기준)은 전월 대비 –1.1% 감소율로 시장 전망을 밑돌았다. 올해 3분기 기준 프랑스의 실업률은 2년 만에 최고치인 7.4%까지 높아졌다.

영국 자산운용사 리걸앤제너럴(LGIM)의 크리스 테스마커 펀드 매니저는 “내년 중 언제, 어느 정도의 강도로 유럽과 영국이 경기 침체에 직면할지 여부가 첫 금리 인하 시점을 결정할 것”이라며 “많은 이들이 고금리로부터의 ‘연착륙’을 기대하지만, 경기 후퇴 우려가 커지면 중앙은행들은 더욱 급격한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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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둔화하고 있다는 점도 피벗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지난 10월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021년 7월 이후 최저 수준인 2.9%(전년 동월 대비)까지 낮아졌다. 같은 기간 영국의 CPI 상승률도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4.6%로, 2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국가별 편차는 있지만, 벨기에(-1.7%), 네덜란드(-1.0%) 등 ‘마이너스 물가’를 나타내는 유럽 국가들도 나오고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티로우프라이스의 유럽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토마스 비엘라데크는 “물가 상승률 하락과 더불어 약한 경제 지표를 고려할 때 예상보다 빠른 금리 인하가 단행될 가능성은 매우 커졌다”며 “실물 경제가 데이터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면, 아마 영란은행은 (내년) 5월쯤 금리를 낮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ECB는 10차례, 영란은행은 14차례 연속 금리를 올린 뒤 최근 동결한 바 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