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중국 뛰어넘었다"…투자자들 도쿄로 몰린 까닭
일본 투자은행(IB) 업계의 수수료 수입이 25년 만에 중국을 뛰어넘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정학적 갈등 요소에 취약한 중국 증시에 대한 기피 심리가 확산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역내 투자 자금이 일본으로 쏠린 데 따른 여파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일본 IB들이 수수료 수입으로 벌어들인 돈은 4억4000만달러(약 5962억달러)로, 아‧태 지역 전체의 약 30%를 차지했다. 기업공개(IPO)와 후속 투자, 블록트레이딩(대량매매), 전환사채(CB) 발행 등에 따른 자문 수수료를 모두 합한 수치다.

같은 기간 중국 IB 업계의 수수료 수입은 3억6700만달러(약 4976억원)로 집계됐다. 아‧태 지역 내 비중은 25%에도 못 미친다. 일본과 중국 IB 업계의 상황이 뒤바뀐 건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양국 증시는 최근 완전히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다. 미‧중 긴장 고조에 따라 글로벌 투자자들의 대(對)중국 투자 심리도 대폭 악화한 것이 주효했다. 상하이·선전증시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CSI 300 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이날까지 10.78% 하락, 팬데믹 직후 최저점보다 낮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중국 규제 당국이 뉴욕, 홍콩 등으로의 해외 상장 규제를 강화하면서 중국 IPO 시장도 크게 위축됐다.

일본은 중국에서 발을 뺀 투자자들에게 제1의 대체 투자처가 됐다.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지수는 지난 6월 1990년 7월 이후 33년 만에 처음으로 3만3000선을 넘어섰다. 올해 누적 상승률은 19.31%에 달한다.
"드디어 중국 뛰어넘었다"…투자자들 도쿄로 몰린 까닭
도쿄증권거래소가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 주가순자산비율(PBR) 인상 압박을 강화함에 따라 IPO 시장은 본격 강세장에 진입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아‧태 증시 공동 책임자인 악세이 쇼우니는 “일본 유통시장(secondary market)이 연중 내내 활기를 띠면서 IPO와 후속 투자, CB 발행 등이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며 “일본 증시는 올해 아‧태 지역 내에서 최고 성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며,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 시장 유동성은 메마른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선 팬데믹 기간 억눌려 왔던 상장 수요가 최근 들어 폭발하고 있는 모양새다.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시점이 주요국 대비 늦어진 탓에 향후 몇 달간 IPO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거란 전망이다.

골드만삭스의 일본 증시 책임자인 유스케 미노와는 “올해 상장한 라쿠텐은행과 SBI스미신넷뱅크의 주가가 공모가 대비 각각 20%, 30% 오른 것을 보면 새내기 주에 대한 일본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가 매우 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며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여파가 한창인 가운데 상장한 두 종목은 장외 시장에서마저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지속돼 온 ‘디플레이션(장기간 물가 하락)의 시대’가 마침내 끝을 보임에 따라 기업들이 대대적인 지출 전략 수정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즈키 책임자는 “‘디플레이션 경제’가 ‘인플레이션 경제’로 바뀌면서 많은 기업이 디지털화 또는 탈탄소화 등으로 비즈니스 모델 전환에 나섰고, 이에 따른 자본 지출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