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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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를 생각하면 일자리가 떠오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녹색 전환은 1980년대 탈산업화 이후 발전에 뒤쳐진 지역사회에 (일자리라는) 희망을 되찾아 줄 수 있다."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 대표)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매년 3조달러 이상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기업들에 엄청난 투자 기회가 열린 것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대응책을 고민하는 전 세계 정치인들의 수사(레토릭)는 공통적으로 기업 투자와 고용 확대다. '친환경 녹색 전환'을 새로운 먹거리로 삼은 기업들이 각종 설비 투자에 나서면 일반 국민들에게도 과실이 돌아갈 것이란 구호다. 미국 정부는 더 많은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제조업 기반을 되살리기 위해 세액공제나 보조금 같은 혜택을 내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들이 넷제로(탄소중립)를 향한 여정이 환경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달콤한 주장'을 펼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기후위기에 대해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에게 일단 문제 해결에 동참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근본적인 문제는 전 세계 주류 정치인들 대부분이 기후위기에 대해 편리하게도 반쪽짜리 진실만 취사선택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에 지지 선언을 한 조 바이든 대통령. 사진=REUTERS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에 지지 선언을 한 조 바이든 대통령. 사진=REUTERS
현실적으로 양질의 일자리 전환(창출)은 녹록지 않을 뿐더러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만 더 든다는 지적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갈색 일자리'에서 '녹색 일자리'로의 전환이 기대만큼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로 △두 종류의 일자리가 처음부터 지역적으로 불균형하게 분포돼 있고, △갈색 일자리 종사자는 녹색 일자리 종사자에 비해 재교육 재훈련 등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는 점 등을 꼽았다.

미국에서 최근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역대급 총파업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녹색 전환에 따른 두려움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 전기차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오히려 대규모 해고를 낳거나 임금 삭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바이든 대통령은 IRA 등 각종 입법을 통해 "새로운 녹색 산업에서 고임금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며 '바이든노믹스(Bidenomics)'를 주창해왔다.

하지만 이처럼 여론 반발이 계속됨에 따라 공화당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후위기 대응 정책 완화를 핵심 선거 전략으로 삼고 있다. 공화당 대표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핵전쟁 위협이 지구온난화 위험보다 훨씬 크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 의제를 비판하고 있다.

이달 중순 영국 '포트 탈봇 제철소'의 노조가 들고 일어난 배경에도 녹색 전환이 자리잡고 있다. 영국 정부는 해당 제철소 운영사인 인도 타다스틸이 낡은 고로를 친환경 전기아크로(EAF)로 대체하는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5억파운드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노조와 야당은 "전기아크로 도입으로 인해 3000명의 직원이 해고될 처지에 놓였다"며 "혈세를 들여 국민 일자리를 빼앗는 꼴"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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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반발의 배경에는 기업의 녹색 전환 투자가 고용 창출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 탓도 있지만, 대중의 인식이 당위성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하는 측면도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장기적 구호와 그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에게 그 비용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전형적인 '내 지갑에서는 안돼(님프·Not in my pocket)'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빠듯할수록 이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최근 영국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인들의 70% 가량은 "기후위기 대응에 찬성한다"거나 "정부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가계의 생계비 증가를 수반할 경우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지지율은 16%로 떨어졌다. 응답자의 54%는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보다는) 생활비 조정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답했다. FT는 "이는 선진국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는 친환경 정책에서 후퇴하게 만드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연구 전문가인 매트 굿윈 영국 켄트대학교 정치국제관계대학원 정치학 교수는 "넷제로 추진에 대한 대중의 반발심이 서방 정치권에서 '제2의 포퓰리즘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과 스웨덴이 최근 연달아 기후위기 대응 속도조절에 나선 것도 여론을 의식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두 나라는 넷제로에 앞장섰던 국가들이지만, 이달 중순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연장하거나 유류세를 감면해주는 등 일보후퇴로 돌아섰다.
넷제로보다 생계비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영국 설문조사 결과. 출처=매트굿윈 정치학 교수 블로그
넷제로보다 생계비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영국 설문조사 결과. 출처=매트굿윈 정치학 교수 블로그
독일에서도 최근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독일 정부는 내년부터 일반 가정의 화석연료 보일러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열펌프, 태양광 패널, 수소 보일러 등으로 바꾸도록 했다. 그러나 정부의 에너지 전환 추진이 과도하다며 "녹색 파시즘(전체주의)"이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던 극우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의 지지율은 급상승한 반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정당들의 인기는 하락했다. 이에 독일 정부는 전환 시기를 늦추고 지방자치단체에 더 많은 부담을 전가하는 등 당초 난방법안을 대폭 축소해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이웃 국가들의 상황을 지켜 본 프랑스는 '영리한' 선택을 내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가 생태계획위원회를 열어 "우리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경제적 가치도 창출하는 방식으로 친환경 전환을 이행해야 한다"며 이를 '프랑스식(à la française) 환경주의'라고 강조했다. 화석연료 의존도를 2030년까지 절반 이상 줄여 40%로 낮추겠다면서도 '석유·가스 보일러 전면 퇴출' 등과 같은 과감한 조치를 서두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5월에도 "이미 입법화된 규제를 이행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유럽연합(EU) 차원의 새로운 친환경 규제를 도입하는 것을 일시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그가 이처럼 조심스러운 접근법을 취하는 것은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8년 친환경 전환을 위해 유류세 18% 인상안을 도입했다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진 '노란조끼 시위'를 겪은 적이 있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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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구의 온도를 더 이상 높여서는 안 된다, 화석연료 에너지를 친환경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거시적 담론'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상고온, 대형 산불, 가뭄, 홍수 등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위기 징조가 잇따르기 때문이다. FT는 "지구 온난화와의 싸움을 포기하는 정치인들은 (기후위기 대응에 의식 있는) 중산층 및 부유층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지난주 기후위기 대응 속도를 늦춘다는 결정을 발표한 자리에서 "영국 국민을 파산시키면서 지구를 구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도 되지 않는데, 영국 국민들에게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유권자의 표심에 호소하는 발언이었지만 뒷말도 잊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여전히 넷제로에 전념하고 있다"는, 양심에 호소하는 발언이다.

FT는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인용으로 칼럼을 마무리했다. 성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사제가 되면 성욕을 포기하는 게 싫어서 이처럼 기도하곤 했다고 고백했다. "주님, 제게 순결(chastity→녹색 전환)과 금욕(continence→지속성)을 주소서. 지금은 말고요"라고.
사진=XIN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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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