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중립금리가 무엇이고 실질금리가 무엇인지 명확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앙금리가 무엇인지 우리는 그 작용을 통해 알고 있다 … 이는 경제가 위축되기보다 탄력적으로 버티는 이유를 설명한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지난해 12월과 지난 20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파월 의장은 불과 9개월만에 중립금리에 대한 입장을 완전히 바꿨다. 이러한 파월 의장의 '변심'이 이번 FOMC 회의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시장에서 자연 형성되는 중립금리가 올라 높은 기준금리가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중립금리란?

중립금리는 경제가 과열되거나 침체되지 않고 잠재성장률을 달성하는 금리를 말한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연스레 형성되는 금리이기도 하다. r* (r스타) 금리라고도 한다. 스웨덴 경제학자인 욘 구스타브 크누트 빅셀이 1890년대 시장금리와 자연 금리를 구별하면서 최초로 제시한 개념이다.
중립금리 개념을 제시한 스웨덴 경제학자 욘 구스타브 크누트 빅셀. 미제스 경제연구소
중립금리 개념을 제시한 스웨덴 경제학자 욘 구스타브 크누트 빅셀. 미제스 경제연구소
이후 한 세기 동안 중립금리는 경제학자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됐다. 수치로 나타나는 기준금리, 시중금리와 달리 측정할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 역시 이러한 속성 때문에 중립금리를 정책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데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중립금리 실제로 올랐나

파월 의장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잭슨홀 미팅에서도 중립금리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당시 "현재 긴축적인 정책 기조가 경제활동, 고용, 인플레이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라며 "그러나 중립금리를 확실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정확한 억제 수준에 대한 불확실성이 항상 존재한다"고 했다.

이러한 파월 의장의 발언은 한달 만에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는 9월 FOMC에서 "중립금리가 상승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전망요약보고서(SEP)에 기재된 FOMC 위원들의 장기금리 전망치를 언급하며 "현재 중립금리가 이보다 높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이는 경제가 위축되기보다는 탄력적으로 버티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공개된 점도표.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각 FOMC 위원들의 장기금리전망치를 나타낸다. Fed
지난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공개된 점도표.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각 FOMC 위원들의 장기금리전망치를 나타낸다. Fed
장기금리를 연 3.0% 이상으로 전망하는 위원 수가 6월 회의 3명에서 9월 5명으로 늘었다. Fed
장기금리를 연 3.0% 이상으로 전망하는 위원 수가 6월 회의 3명에서 9월 5명으로 늘었다. Fed
SEP 장기금리 전망치는 매 FOMC 회의 때 위원들이 점도표(dot plot)를 통해 제시하는 미래 기준금리 목표치다. 미국 경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금리 상단치이기 때문에 사실상 중립금리와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이번 FOMC에서 나온 장기금리 전망치 중간값은 연 2.5%로 직전 6월 회의와 같았다. 개별 위원들의 선택을 따져 보면 조금 더 매파적(통화 긴축적)이다. 장기금리 전망치를 연 3.0% 이상으로 내다본 위원이 3명에서 5명으로 늘었다. 중립금리가 실제로 올랐는지 측정할 수는 없지만, Fed 내에서 '중립금리가 올랐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중립금리는 왜 오르나

중립금리가 오른 배경으로는 늘어나는 미국의 정부 부채와 미국 국채 수요 감소등이 거론된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약 95%로 2020년 초(80%)에 비해 급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한 유동성 증가와 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법 등 투자 확대의 여파로 해석된다. 연방 재정 적자도 팬데믹 이전 GDP의 5% 미만에서 6%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줄어드는 미국 국채 수요도 중립금리 상승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 국채 수요가 줄면 국채 가격이 하락(국채 수익률 상승)하고, 이는 전반적인 시중 금리가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최근 Fed는 팬데믹 기간 늘렸던 미국 국채 보유량을 다시 줄이고 있다. 중국도 4개월 연속 미국 국채를 매도하며 14년만에 미국 국채 보유량 최저치를 찍었다.

이 외에도 노후를 위해 저축하던 은퇴자들이 소비자를 늘리고,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이 발견된 점도 중립금리가 오른 원인으로 거론된다.

중립금리 오르면 어떻게 되나

중립금리 인상으로 인해 고금리 시대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WSJ은 전날 FOMC 회의에 대해 21일(현지시간) "일부 당국자는 금리가 더 오래 뿐만 아니라 영원히 높아질 수 있다고 암시했다"라며 "시간이 지나도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소위 중립금리가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중립금리가 오르면 그만큼 높은 기준금리를 상쇄하기 때문에 고금리가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가령 중립금리가 연 1%라면 기준금리가 연 3%일 때 실질금리는 연 2%겠지만, 중립금리가 연 3%라면 기준금리가 연 3%일 때 실질금리가 연 0%가 된다. 중립금리가 내려가기 전까지는 Fed도 쉽게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한 주택이 매물로 나와있다. /AFP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한 주택이 매물로 나와있다. /AFP
높은 중립금리는 시장이 그만큼 활발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임금 상승이 높은 금리 부담을 상쇄할 수도 있다. 다만 기존 주택·자동차·카드 대출 보유자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WSJ은 "장기간에 걸친 높은 이자율은 주택·자동차 구매를 위해 당장 대출을 받아야하는 가구에 큰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라며 "신용카드 부채에 의존하는 사람들도 타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미국에서 중간 가격 주택을 구입한 중간소득 가구는 소득의 44%를 원리금 상환에 썼다. 2006년 이후 최고치다. 올해 2분기 미국 신용카드 및 자동차 대출 잔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