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ditor's Letter
세계가 생물다양성에 주목하는 이유
언론은 대개 리딩 기업에 주목합니다. 〈한경ESG〉도 기후변화 대응을 잘하는 선도기업에 대해 자주 다룹니다. 많은 기업이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선 사례만 접하다 보면 모두가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기업 관계자를 만나보면 몇몇을 제외하고는 의외로 기후변화 대응을 여전히 어려워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ESG 영역 중 기후변화 하나만 봐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생물다양성이라는 새로운 논의가 급부상해 기업들의 걱정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유엔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가 직접적 계기입니다. 총회에 모인 190개국 대표는 2030년까지 자연과 생물다양성 손실을 멈추고 역전시킨다는 데 합의하고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를 채택했습니다. 이번 총회가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중국 쿤밍에서 온라인으로 열린 회의의 후속 격이라 두 도시의 이름이 함께 들어갔습니다. 해외 언론은 GBF를 파리기후변화협약 체결에 견주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넷제로가 있는 것처럼, 생물다양성은 ‘네이처 포지티브’가 목표입니다. 생물다양성 손실을 멈추고 플러스로 전환한다는 의미입니다. 2030년까지 이를 달성하기 위한 37가지 세부 목표가 GBF에 담겨 있습니다. 2030년까지 세계 자연자본의 30%를 보호한다는 ‘30 by 30’이 그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 육지와 바다의 30%를 ‘그린벨트화’한다는 것입니다. GBF는 기업에도 명확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자연에 대한 의존도와 영향, 리스크를 평가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기업에 요구합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일부 국가의 반발로 권고에 그쳤지만, 추후 의무화를 예상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습니다.

기후변화 이슈에 가려져 있었지만, 생물다양성은 국제사회에서 오랫동안 논의해온 주제입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은 모두 1992년 리우 지구 정상회의에서 출발합니다. 그동안 지구의 풍부한 자연과 생물다양성의 가치는 무시돼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북극곰에서 플랑크톤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의 폭, 다양성은 전례없는 속도로 훼손되었습니다. 1970년 이후 포유류와 조류, 양서류, 파충류, 어류의 개체수가 69% 감소했다는 통계가 대표적 예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세계 총 GDP의 절반이 넘는 약 44조 달러의 경제적가치가 자연에 의해 창출된다고 추산합니다. 자연에 의존하는 많은 기업과 생산 활동이 생물다양성 훼손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생물다양성은 기후변화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탄소중립은 탄소감축만으로는 달성이 불가능합니다. 탄소중립에 필요한 탄소감축량의 30%를 자연이 제공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을 별개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생물다양성 논의에 주목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지난해 GBF 합의는 전격적이라고 할 만큼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습니다. 기후변화에서 10년 이상 걸린 성과가 약 10개월 만에 나왔다고 평가됩니다. 생물다양성은 기후변화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기후변화의 성공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입니다. 이미 자연자본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가 글로벌 공시 표준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생물다양성은 기회의 측면도 있습니다. 생물다양성 보전 분야는 잠재시장 규모가 연간 10조 달러에 달하는 큰 투자 기회로 꼽힙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