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 포르투갈 등 서방 주요 국가들이 선거를 앞두고 국경을 걸어 잠그는 반(反)이민 공약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영국은 이민자 유입 상한제를 도입한다고 밝혔고 포르투갈은 외국인 무비자 입국 정책을 폐지했다. 미국은 이민자의 망명 신청을 금지할 계획이다.
선거 앞두고 다급한 바이든·수낵…이민 빗장 건다

총선 앞둔 수낵 ‘반이민’ 승부수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다음달 4일 총선에서 승리하면 이민자 수를 제어하기 위한 법적 상한선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수낵 총리는 “우리는 영국으로 오는 사람 수를 줄이기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며 “이는 효과적이었지만 여전히 이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는 더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내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으로 들어온 순이민자 수는 68만5000명으로 5년 전(27만6000명)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에 수낵 총리는 자국에 들어온 불법 이민자를 다음달 23일부터 아프리카 르완다로 송환해 난민 심사를 받게 하는 ‘르완다 플랜’을 추진하고 있다.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난민은 르완다나 제3국으로 망명을 신청해야 한다. 영국은 이같이 망명 심사를 외주화한 대가로 르완다에 5년간 3억7000만파운드(약 6300억원)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트럼프식 규제 추진

‘유럽에서 가장 이민에 관대한 나라’로 꼽히던 포르투갈 역시 오는 9일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다시 국경을 걸어 잠갔다. 안토니우 아마로 대통령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포르투갈에서 일하고자 하는 외국인은 입국 전 취업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유럽연합(EU) 소속이 아닌 이민자도 고용 계약 없이 포르투갈에 이주한 뒤 1년간 사회보장금을 납부하면 거주 자격을 신청할 수 있었다. 지난 3월 총선을 통해 중도우파 연합인 민주동맹(AD) 소속의 루이스 몬테네그루 총리가 집권하면서 반이민 정책이 힘을 얻고 있다.

이날 미국 언론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남부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악관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 명령이 법정에서 무효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부 검토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조치를 감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국경 지역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정치 조언가들의 의견이 힘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와 비슷한 행정명령을 2018년 시행했지만 연방법원이 무효화했다. 입국 방법에 관계없이 인도적 보호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한 망명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순유입 이민자는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 47만7000명, 2021년 37만6000명으로 크게 줄었지만 이후 2022년 99만9000명, 지난해 113만9000명을 기록하며 팬데믹 이전 수준을 뛰어넘었다.

도마에 오른 이민의 경제 효과

서방 주요 국가들이 이민의 벽을 높이는 것은 노동력이 부족했던 팬데믹 시기가 지나고 노동자 간의 일자리 경쟁이 다시 시작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 캔자스시티연방은행은 지난달 22일 보고서를 통해 “이민 노동자의 유입은 팬데믹 시기 불안정했던 특정 산업의 심각한 인력난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는 2021년 말부터 2023년 말까지 미국 이민자 고용률이 1%포인트 오를 때 채용 미달률은 0.5%포인트 떨어졌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4월 “이민이 증가해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며 순기능을 인정했다.

그러나 3월 30만3000개이던 미국 비농업 신규 일자리가 4월 17만5000개로 급감하며 노동시장이 둔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영국 실업률도 지난해 12월 3.8%에서 넉 달 연속 올라 올 3월 4.4%를 기록했다. 영국 보수당 소속인 로버트 젠릭 전 이민부 장관과 닐 오브라이언 전 보건부 장관은 지난달 한 보고서를 통해 “대규모 이민은 이민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했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의 현저한 둔화와 맞물려 있다”고 지적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