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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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광산기업 BHP가 최근 앵글로아메리칸 인수 조건으로 내건 '남아프리카공화국 자회사는 제외' 제안이 남아공 광산업의 쇠퇴를 의미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BHP는 앵글로아메리칸의 중남미 구리 사업부만 사들이겠다고 제안한 바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시간) "남아공의 국부를 창출하던 선도 기업에서 경쟁사의 인수 대상이 된 앵글로아메리칸의 역사는 광산 강국으로서 남아공의 쇠퇴와 남아공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데 수반되는 위험이 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남아공은 1920년대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의 북쪽에서 백금 매장지가 발견된 이후 광산업이 기반 산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지난달 BHP는 앵글로아메리칸 인수 입찰에 참여했다. 310억파운드(약 53조원)를 인수가로 제안하면서다. 대신 백금 자회사 앵글로아메리칸 플래티넘(Amplats·이하 앰플랫츠)과 철광석 자회사 쿰바를 분할 매각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두 자회사는 남아공 광산을 보유하고 남아공 증시에 상장돼 있다. 앵글로아메리칸 이사회는 "남아공에 기반을 둔 자회사는 사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BHP의 입찰 제안을 불허했다.

백금은 의료 장비, 디젤자동차 배기 장치 등 사용처가 다양한 금속이다. 하지만 최근 1년 새 과잉 공급 등을 이유로 백금 가격은 28% 가량 떨어졌다. 이 여파로 앰플랫츠의 주가는 45% 가까이 급락했다. 채굴 비용 상승 등으로 인해 인력은 거의 5분의 1로 줄었다. 이 같은 백금 시장의 침체기는 남아공의 광산업이 수년간의 정부 투자 부족으로 인한 정전, 인프라 붕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과 맞물려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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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앵글로아메리칸을 이끌었던 창업자 가문에 관한 책 '해리 오펜하이머: 다이아몬드, 금 그리고 왕조'의 저자 마이클 카도는 "남아공은 대형 광산 회사가 새로운 자원 탐사 등에 투자하기에 매우 부담스러운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며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은 마치 아프리카 대륙의 기업 제국의 해가 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캐나다 싱크탱크 프레이저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62개 광산 관할권 중 남아공이 하위 10위권 국가에 속한다고 응답했다. 말리, 부르키나파소보다 낮은 순위였다. 글로벌 광물위원회에 따르면 남아공 정부가 광업 지적도(사용 가능한 채굴 또는 탐사권을 나열하는 공개 온라인 지도)와 같은 기본적인 사항을 설정하는 것조차 지연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기업솔루션의 피터 메이저 광산 부문 디렉터는 "많은 광산업체들이 남아공의 정치 상황을 바라보며 걸림돌이 너무 많아 남아공에서 자산을 소유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이곳에서 자산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에 휘말리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