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러닝 - ESG클럽 월례포럼
김상민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사진=서범세 기자
김상민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사진=서범세 기자
“국가별로 공급망 실사의 주체, 범위, 의무, 제재 정도는 다를 수 있으나 적용 대상 법률을 아우르는 공급망 실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실사 의무가 확대되고 있어 기업이 사회적책임과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고 소비자와 이해관계자로부터 신뢰를 유지, 강화하려면 공급망 실사 의무가 없어도 기본적인 실사 체계를 갖춰야 한다.”

지난 3월 20일 서울시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ESG클럽 월례포럼’에서 김상민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가 한 말이다. 그는 유럽연합(EU)의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의 적용 대상 기업이 줄어든 것과 무관하게 기업이 선제적으로 공급망 실사 체계를 마련할 것을 조언했다.

기업에 인권·환경보호 의무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 EU의 CSDDD는 지난 3월 15일(현지 시각) 가까스로 무산 위기를 넘기며 통과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7개국 대사급 상주대표회의는 독일과 이탈리아 등 국가의 기권으로 두 차례 연기된 CSDDD 최종안을 승인했다.

CSDDD는 기업이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강제노동이나 산림벌채 등 인권침해와 환경피해를 방지하고 문제 해결 의무를 부여하는 법이다. 규정 위반 시 연 매출액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한다. 이날 승인은 지난해 12월 이사회(27개국)·유럽의회·집행위 간 3자 협상 타결에 따른 후속 조처다.

김 변호사는 대사급 상주대표회의에서 CSDDD가 가결됨에 따라 올해 4월 중 EU 의회에서 최종안을 공식적으로 승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U 의회 회기가 오는 6월 종료되는 만큼 그 전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CSDDD 최종안은 발효하고 3년 후부터 종업원 5000명 초과 및 전 세계 매출액 15억 유로(2조1900억원) 이상 역내 기업과 EU 내 매출액 15억 유로 초과 역외 기업에 적용된다.

국내 기업, 2027년부터 영향권

발효 후 적용 대상 기업을 점차 확대해 5년 후부터는 전 세계 매출액 4억5000만 유로 및 종업원 1000명을 초과하는 역내 기업과 EU 내 매출액 4억5000만 유로를 초과하는 역외 기업에도 적용된다. 김 변호사의 예상대로 상반기 내 법안이 최종 승인되면, 이르면 2027년부터 국내 주요 대기업에도 CSDDD가 적용되는 셈이다.

김 변호사는 CSDDD 최종안의 수정으로 기존 대비 30% 수준으로 적용 대상 기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공급망 실사 의무가 없는 국내 기업이라도 유럽과 거래 관계가 있다면 조기에 영향을 받는 만큼 공급망 실사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EU에 제품을 수출하는 1만8000개 기업 중 상당수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 EU 공급망실사지침이 EU 역내 기업 외에도 고위험 산업군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역외 기업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EU에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이 아니더라도 수출 기업의 공급망 내 포함된 국내 기업 역시 CSDDD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생산성본부는 CSDDD가 발효되면 자동차 부품사, 반도체, 제약 및 바이오, 화장품 산업이 먼저 영향권에 놓일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정부도 2023년 5월 공급망 실사 대응을 시급한 현안 과제로 파악하고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공급망 실사 지원만을 목표로 한 공급망 대응 종합 지원 방안을 발표, 500여 개 수출 기업을 대상으로 현장 실사 등을 포함한 전 단계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기로 했다.

국회에 제출된 공급망실사법

이에 김 변호사는 공급망 실사 의무화에 앞서 조기에 공급망 실사 체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국내 기업의 경우 경영책임자 등 담당 임원의 별도 선임, 실사 이행 조직의 구성, 필요한 예산 투자, 업무 매뉴얼과 프로세스 구축, 실사 의무 이행을 위한 진단 툴 마련 등 5가지를 공급망 실사 체계 구성 요소로 제시했다.

특히 2023년 3월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급망실사법이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에게 공급망 실사 의무를 부과해 중대재해처벌법과 마찬가지로 관련 조직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경영책임자와 구분되는 이행책임자의 지정도 검토해야 한다고 봤다.

이행 조직과 관련해서는 전담 조직을 신설하거나 기존 조직을 활용할 수 있어 ESG 담당 부서, 이사회 내 ESG위원회, 인사팀, EHS(환경보건안전)팀 등 기존 조직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 의원이 발의한 공급망실사법의 경우 인권환경실사 등을 심의·의결하는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예산과 관련해서는 실사 이행 체계 구축을 위해 실사 수행과 결과 분석, 대책 수립, 이행 평가 검증을 위한 인력과 자료 구비뿐 아니라 협력 기업에 대한 교육, 훈련, 자료 지원, 협력사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인권환경실사 관련 시스템 구축, 제보자에 대한 포상과 관련 캠페인 추진을 위한 예산까지 광범위하게 검토해 책정할 것을 제안했다.

업무 매뉴얼과 프로세스 구축을 위해 주기적으로 실사 대상 범위를 재정립하는 것은 물론 산업군별 주요 협력사를 식별하고, 계층(tier)으로 구분하며, 인권 환경 위험을 분석하고 신규 계약업체 선정 기준을 마련해 적용하는 등 방식으로 공급망 전반의 위험을 식별하고 완화하는 프로세스를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공급망 실사 의무 이행에 앞서 협력사 행동강령, 내부 점검, 분야별 핵심성과지표(KPI) 설정을 위한 사전 문서를 작성해보고, 특히 계약과 관련해 환경 의무 준수에 관한 진술 및 보증, 의무 위반 시 계약 임의 해지, 감사 권한 및 시설 출입 자료 요구권 등 조항을 광범위하게 검토해 모범 계약 양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CSDDD는 결국 실무상 가치사슬 또는 활동사슬 등 공급망 범위의 특정이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국가의 관련 법률을 검토해야 하고 이를 모두 충족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실사 주체뿐 아니라 객체인 중소기업도 공급망 실사 체계를 구축해야 하고 이들 기업은 협력사의 요구가 정당한지, 항변 사유가 있는지 검토하고 계약 조항에 따라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