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 못지않아"…日증시 이끄는 도쿄일렉트론
“기존보다 2.5배 빠르게 초고속으로 회로를 깎아내는 획기적인 기술 혁신입니다.”

지난해 12월 일본 국내외에서 8만 명이 찾은 반도체 국제전시회. 이날 가와이 도시키 도쿄일렉트론 사장이 신장비를 공개하는 자리는 관람객으로 붐볐다.

반도체 제조장비 대기업인 도쿄일렉트론이 공격적인 투자로 일본 증시에서 주목받고 있다. 도쿄일렉트론 시가총액은 올 들어 13조엔을 돌파하며 도쿄증권거래소 내 6위로 급부상했다. 지난 10년간 시총은 11배 불어났다. 이 같은 성장세를 지속하기 위해 향후 5년간 1조엔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할 계획이다.

도쿄증시 이끄는 반도체주

도쿄일렉트론은 올 들어 활황인 일본 증시를 이끌고 있다. 지난 5일 주가는 2만8205엔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서만 19% 올라 시총 13조엔을 넘어섰다. 2020년 20위였던 시총 규모는 현재 6위로 튀어 올랐다.

도쿄일렉트론은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전공정’ 제조장치에 강점이 있다. 제조장치 전체 매출은 세계 4위다. 웨이퍼에 막을 입히는 성막장치와 세정장치 등 8개 품목에서 세계 점유율 1~2위를 고수하고 있다.

웨이퍼를 칩으로 가공하는 ‘후공정’에 대응하는 장비 등 2개 품목도 육성해 이 분야에서도 점유율 1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반도체 성능 향상을 견인한 것은 전공정 기술이었지만 이제는 칩을 여러 개 묶어 성능을 높이는 후공정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도쿄일렉트론의 사업 개척을 뒷받침하는 것은 높은 R&D 투자 효율이다. 최첨단 제조장치로 독주 중인 네덜란드의 ASML을 능가하는 투자 효율을 자랑한다. 도쿄일렉트론의 투자 효율은 7.3배로 ASML(6.8배),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5.5배)를 크게 웃돈다.

투자자들의 기대는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시총은 10년 전보다 11배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 반도체 제조장비 1위인 AMAT(6배), 2위인 ASML(9배)을 웃돈다. 라쿠텐증권 경제연구소의 이마나카 노부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도쿄일렉트론에 대해 “제품군의 균형이 해마다 좋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제품군이 다양해지면서 불황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5년간 R&D 1조엔 투자

도쿄일렉트론의 시총은 ASML(약 41조엔)에 한참 뒤처진다. 일본 금융정보업체 퀵팩트셋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최근 5년 평균 매출 증가율(CAGR)은 ASML이 18%로 도쿄일렉트론보다 3%포인트 높다. ASML은 수익성을 나타내는 매출 대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비율도 34%로 도쿄일렉트론보다 4%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ASML은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치를 독점적으로 다루고 있어 향후 성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

도쿄일렉트론은 ASML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향후 5년간 사상 최대인 1조엔 이상을 R&D에 투자할 방침이다. 이는 지난 5년 대비 60% 늘린 규모다. 이와이 코스모증권의 사이토 가즈카는 지난해 11월 창립 60주년을 맞은 도쿄일렉트론에 대해 “일본의 전통 제조업에선 보기 드문 기업가정신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 업체는 5년 뒤 매출 3조엔 이상(지난해 2조2100억엔)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공격적인 R&D 투자와 함께 기술, 인력 등의 경영 자원 확보도 중요하다. 도쿄일렉트론은 2015년 AMAT와의 경영 통합이 결렬된 뒤 눈에 띄는 인수합병(M&A), 협력 사례가 없다. 대신 다른 기업 및 산학과 연계하는 오픈이노베이션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인력은 향후 5년간 일본 국내외에서 총 1만 명을 신규 채용할 방침이다. 지난해 말 직원 수 대비 1.6배 많은 2만6000명 규모로 늘어난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