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영혼의 파트너' 찰리 멍거, 향년 99세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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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 "찰리의 영감 없었다면 지금 위치 없었을 것"
오마하에서 만나 60년 넘게 파트너로 활동
'버크셔해서웨이' 설립 3년 만에 부회장 취임
버핏에게 "위대한 기업을 찾아야" 조언하기도
오마하에서 만나 60년 넘게 파트너로 활동
'버크셔해서웨이' 설립 3년 만에 부회장 취임
버핏에게 "위대한 기업을 찾아야" 조언하기도
워런 버핏 회장과 함께 버크셔해서웨이를 이끈 '영혼의 단짝' 찰리 멍거(사진) 부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99세.
버크셔해서웨이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멍거가 캘리포니아 한 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임종을 맞았다고 밝혔다.
버핏은 성명을 통해 "버크셔해서웨이는 찰리의 영감, 지혜, 참여가 없었다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의 인연은 1959년 지역 사교모임인 '오마하 클럽'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들은 서로의 지적 능력을 단박에 알아봤다. 둘은 버핏의 스승이자 가치투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벤자민 그레이엄의 사상을 공유했다. 버핏은 멍거에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변호사업보다는 투자가 빠른 길이라고 조언했다. 이는 훗날 멍거가 전업 투자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멍거는 1962년 법률자문회사 멍거톨스앤올슨을 설립하고 부동산 전문변호사로 활동했다. 같은 해 헤지펀드 휠러멍거앤코를 세워 투자를 병행했다. 3년 뒤 그는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전업 투자자로 나섰다. 휠러멍거앤코는 설립 후 13년간 연평균 19.8%의 수익률을 거뒀다.
멍거는 1976년 버크셔해서웨이에 정식으로 합류했다. 버핏이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으로 취임한지 1년만이었다. 1978년 부회장으로 취임한 멍거는 40년 넘게 버핏과 함께회사의 연례 주주총회에 참석해 회사의 철학과 자신의 투자 신념을 투자자들에게 알려왔다.
멍거는 1984년부터 2011년까지 버크셔해서웨이의 자회사인 웨스코파이낸셜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1997년부터는 미국 창고형 대형마트인 코스트코의 이사로 활동했다.
멍거는 "모든 현명한 투자는 가치투자"라는 신조를 갖고 기업 내재가치보다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내 이익을 창출했다. "투자란 몇 군데 훌륭한 회사를 찾아내 그저 엉덩이를 붙이고 눌러앉아 있는 것"이라는 말에 그의 투자 철학이 잘 담겨있다. 포트폴리오를 우수한 소수의 기업으로 구성해 장기 투자하는 전략이 성공 비결이었다.
버핏은 투자 초기 남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같은 주식을 매수해 차익을 거두는 '담배 꽁초' 전략을 고수했는데, 이를 바꾼 이도 멍거다. 멍거는 투자를 결혼과 연애에 비유했다. 결혼(장기투자)할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은 연애(단기투자)를 할 때 상대방을 만날 때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후 버핏은 담배꽁초 전략을 자신의 "실수"라고 인정하며 위대한 기업을 찾는 투자자로 거듭났다.
이러한 투자 철학이 잘 드러난 사례가 바로 '코카콜라'다. 버크셔해서웨이가 코카콜라를 매수하기 시작한 1988년 코카콜라 주가수익비율(PER)은 18배로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버핏과 멍거는 코카콜라의 장기 전망에 비춰봤을 때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버크셔해서웨이가 거둔 연평균 수익률은 67.6%로 추정된다.
멍거는 암호화폐 투자에 대해 "어리석다"고 혹평했다. 그는 지난 2월 자신이 발행으로 있는 로스앤젤레스(LA) 지역 신문 데일리저널의 연례회의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쓰레기를 믿고 정부가 존재를 허용하는 것이 부끄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멍거는 생전에 26억달러(약 3조3600억원·지난달 포브스 추정치)의 재산을 남겼다. 멍거 부회장은 결혼 9년만에 이혼한 첫번째 아내 낸시 허긴스와의 사이에서 세 명의 자녀를 뒀다. 2010년 사별한 두 번째 아내 낸시 멍거와는 네 명의 자녀와 양아들 두 명을 뒀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버크셔해서웨이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멍거가 캘리포니아 한 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임종을 맞았다고 밝혔다.
버핏은 성명을 통해 "버크셔해서웨이는 찰리의 영감, 지혜, 참여가 없었다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런버핏과 동향, 64년 간 영혼의 파트너
멍거는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1924년 출생했다. 6살 아래인 버핏과 동향이지만 어릴 때는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 멍거는 미시간대를 중퇴한 뒤 2차세계대전 때 공군 장교로 복무했고, 이후 하버드대 로스쿨에 다시 진학해 1948년 졸업했다.둘의 인연은 1959년 지역 사교모임인 '오마하 클럽'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들은 서로의 지적 능력을 단박에 알아봤다. 둘은 버핏의 스승이자 가치투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벤자민 그레이엄의 사상을 공유했다. 버핏은 멍거에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변호사업보다는 투자가 빠른 길이라고 조언했다. 이는 훗날 멍거가 전업 투자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멍거는 1962년 법률자문회사 멍거톨스앤올슨을 설립하고 부동산 전문변호사로 활동했다. 같은 해 헤지펀드 휠러멍거앤코를 세워 투자를 병행했다. 3년 뒤 그는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전업 투자자로 나섰다. 휠러멍거앤코는 설립 후 13년간 연평균 19.8%의 수익률을 거뒀다.
멍거는 1976년 버크셔해서웨이에 정식으로 합류했다. 버핏이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으로 취임한지 1년만이었다. 1978년 부회장으로 취임한 멍거는 40년 넘게 버핏과 함께회사의 연례 주주총회에 참석해 회사의 철학과 자신의 투자 신념을 투자자들에게 알려왔다.
멍거는 1984년부터 2011년까지 버크셔해서웨이의 자회사인 웨스코파이낸셜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1997년부터는 미국 창고형 대형마트인 코스트코의 이사로 활동했다.
"투자는 몇 군데 회사 찾아 눌러앉는 것"
버핏의 명성에 다소 가려졌지만 멍거 역시 가치투자의 대가로 손꼽힌다.멍거는 "모든 현명한 투자는 가치투자"라는 신조를 갖고 기업 내재가치보다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내 이익을 창출했다. "투자란 몇 군데 훌륭한 회사를 찾아내 그저 엉덩이를 붙이고 눌러앉아 있는 것"이라는 말에 그의 투자 철학이 잘 담겨있다. 포트폴리오를 우수한 소수의 기업으로 구성해 장기 투자하는 전략이 성공 비결이었다.
버핏은 투자 초기 남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같은 주식을 매수해 차익을 거두는 '담배 꽁초' 전략을 고수했는데, 이를 바꾼 이도 멍거다. 멍거는 투자를 결혼과 연애에 비유했다. 결혼(장기투자)할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은 연애(단기투자)를 할 때 상대방을 만날 때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후 버핏은 담배꽁초 전략을 자신의 "실수"라고 인정하며 위대한 기업을 찾는 투자자로 거듭났다.
이러한 투자 철학이 잘 드러난 사례가 바로 '코카콜라'다. 버크셔해서웨이가 코카콜라를 매수하기 시작한 1988년 코카콜라 주가수익비율(PER)은 18배로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버핏과 멍거는 코카콜라의 장기 전망에 비춰봤을 때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버크셔해서웨이가 거둔 연평균 수익률은 67.6%로 추정된다.
멍거는 암호화폐 투자에 대해 "어리석다"고 혹평했다. 그는 지난 2월 자신이 발행으로 있는 로스앤젤레스(LA) 지역 신문 데일리저널의 연례회의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쓰레기를 믿고 정부가 존재를 허용하는 것이 부끄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멍거는 생전에 26억달러(약 3조3600억원·지난달 포브스 추정치)의 재산을 남겼다. 멍거 부회장은 결혼 9년만에 이혼한 첫번째 아내 낸시 허긴스와의 사이에서 세 명의 자녀를 뒀다. 2010년 사별한 두 번째 아내 낸시 멍거와는 네 명의 자녀와 양아들 두 명을 뒀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