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사진=REUTERS
미국과 유럽 증시 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들이 56조원 넘는 손실을 봤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년 반째 이어져 오고 있는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 사이클이 마침내 끝에 다다랐다는 확신이 시장에 퍼지면서 주요국 증시가 상승 랠리를 보인 탓이다.

금융정보 분석업체 S3파트너스에 따르면 지난 14~17일 미국과 유럽에서 공매도에 나선 헤지펀드들은 432억달러(약 56조3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냈다. 투자정보업체 브레이크아웃포인트는 샘린캐피털, 발야스니자산운용, 애로스트리트캐피털 등이 손해를 입은 헤지펀드에 속한다고 밝혔다.

이들 헤지펀드의 공매도 대상은 금리에 민감한 기술, 헬스케어, 소비재 등 업종이었다. 일례로 미국의 크루즈 운영사인 카니발크루즈라인이 최근 한 주 동안 14% 오르면서 2억4000만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초래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 연료전지 기업 퓨얼셀에너지와 태양광 업체 선런도 20% 가까운 폭등세를 나타냈다.
'증시 하락' 베팅했다가 56조 날렸다…공매도 세력 '날벼락'
유럽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다. 스웨덴의 부동산 대기업 SBB은 상업용 부동산 위기 여파로 올들어 주가가 75%가량 폭락했지만, 최근 며칠 새 33%가량 반등하며 공매도 세력에 타격을 줬다. 투크릭스캐피털, 포세캐피털 등이 공매도에 나선 스웨덴 데이터 제공업체 카스텔룸 주가도 이달 들어 16% 급등했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즈의 유럽 주식 전략 책임자인 에마누엘 카우는 “지난 1년간 고금리 환경에 노출된 기업들을 상대로 공매도 물량을 키워 오던 헤지펀드들이 저품질 기업의 주가마저 끌어올리는 ‘고통스러운’ 증시 반등세에 발목이 잡힌 모양새”라고 말했다. 아르고노캐피털의 배리 노리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난 한 달간 금융 상황이 급격히 개선되면서 일부 (저품질) 종목에서 ‘데드캣 바운스’(주가가 대폭 하락한 뒤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현상)가 나타났다”고 봤다.
사진=AP
사진=AP
일부 헤지펀드들의 ‘숏스퀴즈’(공매도한 주식이 오를 것으로 예상될 때 손실을 줄이기 위해 그 주식을 재매입하는 것)가 주가를 더욱 밀어 올렸다는 분석이다. 카우는 “아무도‘쓰레기(garbage) 주식’ 랠리에 따른 수익을 현금화할 수 없었다”며 “숏스퀴즈가 많은 펀드의 실적을 대폭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는 공매도 비중이 큰 종목을 추종하는 지수들의 상승세에서도 확인된다. S&P500지수 구성 종목 중 달러 가치 기준 공매도 비중이 높은 상위 50개 기업을 담은 골드만삭스의 ‘VIP숏포지션인덱스’는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바클레이즈의 유럽 바스켓 내 공매도 비중이 큰 종목들의 지난 3주간 상승률은 9.9%로, 최소 1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최근의 증시 랠리는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이 사실상 종료됐다는 판단에서 촉발됐다. 미 증시를 대표하는 S&P500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둔화하고 Fed가 기준금리를 2회 연속 동결한 데 힘입어 역대 최고치(4766.18‧2021년 12월 31일)에 근접한 수준까지 치솟았다. S&P500지수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지난주 올해 4월 27일 이후 6개월여 만에 최대 폭으로 오르는 등 강한 상승 동력을 받았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