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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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투자은행의 고위 관계자들이 한국 규제당국의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해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현지시간)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투자은행 두 곳의 대표들이 '한국 규제 당국이 유권자 표심을 의식해 불법 공매도와 합법 공매도를 의도적으로 혼동하고 있다'고 작심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여당과 정부가 무차입 공매도를 근절하기 위해 지난 6일부터 도입한 공매도 금지 조치는 내년 6월까지 지속될 예정이다.

무차입 공매도란 말 그대로 없는 주식을 미리 파는 것으로, 미국 등에서는 불법으로 간주하고 대규모 벌금을 매기고 있다. 한국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월 무차입 공매도를 지속한 글로벌 투자은행 2곳을 적발해 벌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해당 은행들은 HSBC, BNP파리바로 알려져 있다. 금감원은 이들 외에도 10개 남짓한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불법 공매도 관행을 면밀히 조사하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당국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한 글로벌 투자은행의 대표는 FT에 "한국 정부가 공매도 문제에 대해 부기맨, 유령 익살극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주로 기관투자자, 외인투자자로 구성된 공매도 세력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적대감과 공포를 고의적으로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공매도 금지는 상장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게 만들고 해외 투자자들의 유입을 막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글로벌 은행의 한 고위 임원도 "한국에서 투자자는 투자자이기도 하지만 유권자이기도 하다"며 "업계 추산에 따르면 일본과 홍콩 등에서는 개인투자자가 전체 투자자의 약 10%에 불과한 데 반해 한국 자본시장에선 거래량의 약 3분의2를 개인투자자가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권이 표심을 의식해 공매도 금지 조치를 도입했다는 비판으로 풀이된다.

FT는 "두 사람 모두 이번 금지 조치로 인해 MSCI 선진국 지수 등 해외 선진 지수에 편입되기를 희망하는 한국의 야망이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두 대표 중 한 명은 "궁극적으로 한국 기업들에게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얼라인파트너스의 이창환 대표는 FT에 "과거에 MSCI는 한국의 공매도 제한이 선진국 시장 지수 편입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며 "공매도는 주가 거품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를 대상으로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을 진행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한국 코스피 지수는 공매도 금지가 도입된 첫 거래일에 6% 가까이 급등한 뒤 이후 고점 대비 4% 가량 빠졌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