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심상찮은 해상풍력 발전업계-下
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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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풍력 업계에 최근 희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정부가 업계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데 지불하는 계약가격(strike price·일종의 지원금)을 기존보다 66% 높여주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미국과 유럽의 해상풍력 업계는 올 들어 고물가, 고금리 등으로 인해 사업비용이 연쇄적으로 상승하자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왔다. 비용이 폭등하는데도 당국과 맺은 전력구매계약의 행사가격이 낮게 묶여 있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해상풍력 업계에 다시 부는 훈풍 조짐

지난 9월엔 영국 정부가 진행한 해상풍력 프로젝트 입찰에 단 한 곳의 기업도 참여하지 않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달 세계 최대 해상풍력 기업 오스테드가 미국 프로젝트를 접기로 한 것도 뉴욕주 당국이 계약가격 인상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전력구매계약은 태동기에 있는 신재생에너지 업계를 키우기 위한 안전막 역할을 해왔다.

평시에는 이런 방식이 정부와 업계 양측 모두에 윈윈(win-win)이다. 정부로서는 친환경 에너지를 공격적으로 늘릴 수 있고, 개발사들은 전력구매계약을 통해 정부로부터 안정적인 지원금을 받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올 들어 사업비가 치솟자 계약가격도 그에 맞게 인상해달라는 업계 요구가 빗발쳤다. 소매 전력 가격이 오를 것을 우려한 정부는 이들의 재협상 요구에 미온적으로 대응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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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국 정부가 계약가격을 인상하기로 하는 등 최근 대서양 양안에서 변화 기류가 잇따라 감지되고 있다. 뉴욕주는 지난달 말 토탈에너지 등에 3개의 신규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발주하면서 전력구매계약의 가격을 대폭 인상했다. 오스테드를 비롯해 셸 등 기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사업체들의 가격 재협상 요구를 거절한 지 불과 약 2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해상풍력 개발사들의 연쇄 이탈 움직임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번스타인 분석가는 "이번 계약은 미국 당국자들이 해상풍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더 높은 비용을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의 인상 결정에 대해서도 풍력터빈 제조사 베스타스의 헨릭 앤더슨 최고경영자(CEO)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라며 환영의사를 밝혔다.

"중국산 저가 공세에 풍력도 예외없어"

이처럼 정부에 SOS를 보내는 해상풍력 업계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각국에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해상풍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고물가, 고금리 등 최근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공급망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으니 △불확실성을 딛고 투자를 늘리려면 정부가 지속 가능한 전력구매계약 등으로 전폭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유럽에 비해 공급망이 없다시피 한 미국 해상풍력 시장은 첫삽을 뜨기도 전에 고금리 등을 이유로 프로젝트들이 속속 취소됨에 따라 공급망 투자까지 보류되고 있다. 베스타스 관계자는 "확실한 수요처가 되어 줄 프로젝트들이 취소되고 있는 마당에 미국산 부품(풍력터빈) 공급망이 자리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다년 간의 여러 해상풍력 프로젝트 등 확실한 수요 파이프라인을 얻기 전까지는 (미국 설비 투자를) 관망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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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비해 해상풍력 공급망이 성숙한 유럽에서는 작년부터 새로운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태양광, 전기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서 일어났던 일처럼 저가의 중국산 부품이 시장을 잠식할 것이란 우려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7월 중국의 장악력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글로벌풍력에너지협회(GWEC)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신규 풍력터빈 설치의 53.5%를 중국 제조업체가 차지했다. 이는 2018년 36.6%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급기야 지난해엔 유럽(47%)을 제치고 중국이 1위(49%)로 올라섰다.

GWEC는 "중국이 해상풍력 핵심 부품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과 미국의 제약적인 무역정책은 공급망 병목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국가들 역시 미국처럼 역내 공급망이 활용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개발사들이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 공급사들과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5월 독일 에너지 기업 RWE가 북해 지역의 1.6기가와트(GW) 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쓸 하부구조물 공급사로 중국 다진 오프쇼어(Dajin offshore)를 선택한 게 대표적이다.

이달 중순엔 노르웨이 해상풍력 프로젝트 입찰에 중국 최대 풍력터빈 제조사 밍양(MingYang)이 도전장을 내민 것으로 알려졌다. 지멘스가메사의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FT)에 "우리는 글로벌 시장은 물론 유럽에서도 점점 더 많은 중국 경쟁업체를 맞닥뜨리고 있다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중국 제조사들은 정부로부터 (유럽의 10배에 달하는)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며 "유럽 당국은 해상풍력의 탄소감축 기여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터빈 쿼터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韓해상풍력, 이미 탄탄한 공급망 적극 활용해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말 '유럽 풍력 산업 액션플랜'이란 대응책을 발표했다. 현재 7년 가까이 소요되는 신규 풍력 사업 허가 기간을 대폭 단축하고, EU 혁신기금의 청정기술 지원에 할당된 예산을 기존의 두 배 수준인 14억유로(약 2조원)로 확대해 풍력 산업 보조금을 늘릴 계획이다. 아울러 자국에서 과도한 보조금 혜택을 받고 EU 시장에 진출하는 제3국 풍력 산업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U 풍력 부문은 지난해 4억6200만유로의 대(對)중국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의 경우 미국에 비하면 해상풍력 공급망이 성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통적으로 조선·해양플랜트 기술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대만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추진 중인 해상풍력 프로젝트에서 LS전선(해저케이블), SK오션플랜트·현대스틸산업(하부구조물), CS윈드(터빈 타워) 등이 주요 공급사로 활약하고 있다. 파산 위기까지 내몰렸던 HSG성동조선은 올해 상반기 대만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하부구조물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근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은 해상풍력 분야 투자금액을 기존 2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증액해 '해양 신재생 에너지 가치사슬'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각에선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을 견제하기 위해 역내 공급망 조건을 완화해 한국산 부품에 활로가 열릴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이와 별도로 한국 공급망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국내에서도 대규모 해상풍력 발전 단지에 대한 사업 허가가 시급하다. 오스테드의 1.6GW 규모 인천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3년째 발전사업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