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부양 압박에…日상장사, 15조엔 역대급 배당

일본 상장사들이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5조엔(약 139조원)이 넘는 배당을 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증권거래소가 상장사에 ‘주가를 올리라’고 압박한 것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 9일 도쿄증시 상장사의 2023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배당 계획을 종합한 결과 예상 배당금 총액은 15조2200억엔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보다 배당 규모가 1000억엔가량 늘어나면서 3년 연속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세계 경기 전망이 불투명한 와중에도 일본 상장사 가운데 30%가 지난해보다 배당을 늘릴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자사주 매입 규모도 사상 최대 기록을 새로 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5월 말까지 일본 상장사들이 발표한 자사주 매입 규모는 5조1600억엔이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역대 최대 규모로 자사주를 매입한 지난해(9조4000억엔) 기록을 뛰어넘게 된다.

일본 기업들이 주주환원에 적극 나서게 된 데는 도쿄증권거래소의 압박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 4월 도쿄증시에 상장한 3300여 개 기업에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상장사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공시하고 실행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PBR 1배 미만은 시가총액이 회사를 청산한 가치보다 낮은 상태로, 저평가 상태임을 뜻한다. 거래소가 시장에서 결정되는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하라고 기업에 요구한 것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일이어서 당시 논란이 됐다.

거래소의 압박에 상장사들이 적극 호응하면서 닛케이225지수는 이날 1.97% 오른 32,265.17에 장을 마쳤다. 9주 연속 오르며 2017년 이후 가장 긴 상승세를 이어갔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최상위 시장인 프라임시장 상장사만 PBR을 1배 이상으로 개선해도 현재 700조엔인 시가총액이 850조엔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거래소의 주가 부양 압박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각의 간판 정책인 ‘자산소득 두 배 증가’ 정책과도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작년 말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은 2023조엔으로 처음 2000조엔을 넘어섰다. 하지만 금융자산의 54%는 예금과 현금 형태다. 주식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기시다 내각은 가계 금융자산을 증시 등에 적극 유치해 자산소득을 두 배 늘린다는 계획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