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3파전' 양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은행 위기가 다크호스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엔 인플레이션이 판정승을 거뒀습니다. 은행 실적과 예금 유출입만 보면 은행 위기는 없던 일이 돼가고 있습니다. 경기침체 우려도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 확산될 듯 하다 여전히 강한 노동시장 앞에선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옐런까지 배신?…궁지에 몰린 파월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그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위력적입니다. 생산자물가지수(PPI)는 낮고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다소 애매했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았습니다. 산유국들의 감산으로 기름값도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 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시점도 7월에서 9월로 늦춰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아직은 금리인상을 중단할 때는 아니라는 게 시장의 컨센서스로 굳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견도 여전합니다. 은행위기는 끝나지 않았고 경기침체도 반드시 올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금리를 빨리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헷갈리는 평행선을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일정과 이슈를 살펴보겠습니다.

옐런과 파월 갈라서나

옐런까지 배신?…궁지에 몰린 파월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막역한 사이입니다. Fed 의장과 부의장으로서 호흡을 맞춘 데 이어 또다시 재무장관과 Fed 의장으로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당적이 다른데도 전현직 Fed 의장으로서 생각도 거의 일치했습니다. 그런데 고금리 막바지 단계에 이르러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옐런 장관이 일단 엄포를 놨습니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추가 금리인상이 필요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은행발 위기로 인해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고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파월 의장도 지난달 FOMC에서 "은행들의 대출 축소가 금리를 한두 번 올린 효과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5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파월 의장의 측근 중 하나인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는 이미 5월에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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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도 올해까진 파월의 소신에 한 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11일 경제학자 및 이코노미스트 등 6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61%가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옐런 장관의 엄포는 예전만 해도 한국에서 많이 일어나던 일입니다. 기획재정부나 옛 청와대에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감 놔라 배 놔라"하고 대놓고 얘기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나 있었던 일인데 또다시 이런 개입이 본격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은 파월 아닌 옐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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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런의 발언은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이런 압박은 비일비재한 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년에 미국 대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 권력이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통화정책은 완화적인 게 유리합니다. 고금리보다 저금리가 더 달콤합니다. 모든 정치권력은 예외가 없었습니다. 국경도 초월해 대부분의 나라가 똑같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둔 한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공산이 큽니다.

정치 권력의 금리 인하 압박을 무시할 배짱있는 중앙은행 총재는 많지 않습니다. 밖으론 정책 엇박자로 비쳐지기 때문에 계속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중앙은행은 '물가 목표제'를 방패로 내세웁니다. 미국이나 한국 공히 인플레이션 목표
치는 2%입니다.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는데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논리도 굳건합니다.

이에 맞서 "물가 목표를 수정하면 되지 않냐"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2% 목표라는 건 비현실적"이라거나 "융통성있는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주요 논거입니다. 이에 대해 파월 의장 등은 "통화정책의 신뢰를 위해 그럴 수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물가목표' 논란 겪는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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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막바지 시기에 브라질이 이런 논란을 제대로 겪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물가목표는 3.25%입니다. 허용 오차 범위가 ±1.5% 포인트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5.79%였습니다. 10%가 넘었던 2021년보다 낮아져 지난해 9월부터 연 13.75%에서 금리 인상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물가가 목표치보다 높아 금리를 내리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나섰습니다. 룰라 대통령은 물가 목표치를 3.25%에서 4.5%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높아지면서 들썩이고 있습니다. 고물가 시기에 물가목표치를 바꾼 건 축구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골대를 움직인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이 잦아들었을 때, 저물가로 전환했을 때 물가목표치를 수정하는 게 정석입니다. 그러나 정치권력들이 정석대로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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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엔 Fed 인사들이 나와 정석대로 하지 않는 옐런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반기를 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아직 잡히지 않은 만큼 "갈 길이 멀다"거나 "여전히 할 일이 있다"고 주장할 공산이 큽니다. 다만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은행 총재처럼 금리 동결을 주장하며 옐런 쪽으로 기울 인사들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17일), 미셸 보먼 Fed 이사(18일),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19일)의 연설이 이어집니다. 20일엔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 미셸 보먼 Fed 이사 등이 출동합니다. 21일엔 리사 쿡 Fed 이사도 나옵니다.

'극과 극'인 IMF와 Fed

옐런까지 배신?…궁지에 몰린 파월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국제통화기금(IMF)와 Fed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IMF는 미국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계속해서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엔 올해 미국이 1.0% 성장할 것으로 봤다가 올 1월엔 1.4%로 높였습니다. 그러다 이번엔 1.6%로 재차 올렸습니다. 미국의 강력한 노동시장을 믿는 측면이 강합니다.
옐런까지 배신?…궁지에 몰린 파월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반면 Fed의 생각은 다릅니다.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9월 1.2%에서 석달 뒤 0.5%로 낮아졌습니다. 3월엔 0.4%로 다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올 1분기에 선방했습니다. 애틀랜타 연은의 실시간 GDP 예측 프로그램인 GDP나우에선 올해 1분기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보고 있습니다. 2%대에서 0.4%로 내려오려면 하반기에 침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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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 전망대로라면 미국은 '상고하저'일 가능성이 크지만 한국은 정반대입니다. '상저하고' 기대를 꺾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반도체 사이클과 중국 경기에 있습니다.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저점을 찍고 하반기에 올라오고 중국 경기도 살아날 것이란 예측에 근거한 것입니다.

중국 낙관론이 적중할 지는 미국시간 17일 오후 10시(한국시간 18일 오전 11시)에 알 수 있습니다. 중국 1분기 국내총생산(GDP)과 3월 소매판매, 산업생산 등이 발표됩니다. 19일 수요일엔 Fed가 FOMC 때 참고하는 경기동향 보고서 '베이지북'이 나옵니다. '완만한 경기침체'를 강화할 근거가 담겨있는 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믿을 건 기업 실적

침체 여부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실적 시즌도 이어집니다. 눈높이가 많이 낮아진 가운데 '어닝 서프라이즈'가 나오면 큰 호재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주 JP모건과 씨티의 1분기 실적은 괜찮았습니다. 향후 대손충당금과 대출 축소가 염려되지만 1분기까지는 양호했습니다. '뱅크런'도 단기적으론 멎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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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호전된 가운데 이번주엔 뱅크오브아메리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이 실적을 발표합니다. 테슬라와 IBM, 램 리서치 같은 기술 기업들도 실적을 공개합니다. 빅테크의 부진으로 기술 기업들의 실적 전망은 좋지 않습니다. 1분기 기술 기업들의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4% 줄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연초 예상치인 6.7% 감소보다 더 악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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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인플레와 침체의 줄다리기가 이어질 공산이 큽니다. 노동시장은 인플레 편이고 부동산과 소비는 침체 쪽으로 줄을 섰습니다. 은행 위기도 침체와 사실상 같은 편입니다. 이런 가운데 기업 실적이 언제 어디로 기우느냐가 인플레와 침체의 양자 대결이 어떻게 전개될 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입니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이룬 가운데 적절하게 성장하는 '골디락스' 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위기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미니 골디락스' 시대라도 오기를 많은 투자자들이 바라고 있습니다.

아래 유튜브 영상(네이버에서는 시청 불가능)을 보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 '정인설의 워싱턴나우'는 매주 월요일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인 '한경 글로벌마켓'에서 유튜브 영상과 온라인 기사로 찾아뵙고 있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