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변이, 고물가, 집값 급등, 대규모 인력난, 공급 병목…. 올해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대형 이슈들이다.

내년엔 더 큰 ‘깜짝 이벤트’들이 적지 않을 것이란 게 미국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투자 매체인 마켓워치가 21일(현지시간) 전했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3년째로 접어드는 2022년에 주목해야 할 이슈들을 정리했다.

오미크론


팬데믹은 미 경제에 최대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다.

투자금융 업체인 네이비 페더럴 크레딧유니온의 로버트 프릭 이코노미스트는 “바이러스는 여전히 최대 변수”라며 “더 나쁜 변이가 출현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지긋지긋해하지만 코로나19가 내년에도 최대 변수가 될 것이란 점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미국이 코로나 경제에 꽤 잘 적응해왔다는 것이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바이러스 파도가 연이어 왔지만 사람들이 적응하면서 사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던 그대로다.

진짜 문제는 ‘누구도 (바이러스의) 다음 행보를 모른다’는 것이다. 전염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오미크론 변이가 나타나자마자 유럽을 패닉에 빠지게 만든 게 대표적인 사례다.

오미크론 변이가 덜 치명적이더라도 경제엔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영국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부양책 종료


조 바이든 행정부의 2조달러짜리 사회복지 예산안(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은 현재 진퇴양난이다.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다. 의회 통과가 어려운 처지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재정 부양 정책의 중단으로 해석하고 있다. 경제에 ‘긴축 신드롬’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로프 이코노믹 어드바이저의 조엘 나로프 창업자 겸 대표는 “지난 2년간 정부에 의존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다수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의 3~4%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팬데믹 기간 중 상당한 저축을 해온 덕분이다. 인력난은 수십년만의 최대 임금 상승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미국인들이 전보다 훨씬 재정적인 여유를 갖게 됐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나름대로 인력난을 극복하고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기술 투자를 극대화해왔다.

윌밍턴 트러스트의 루크 틸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이 재고를 다시 쌓고 있는데 미국 성장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사람들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올해 미국의 급격한 물가상승률은 월가는 물론 워싱턴의 정가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물가는 거의 40년만의 최고치로 치솟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동기 대비 6.8% 뛴 것으로 집계됐다. Fed가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려는 배경이다. Fed는 “물가가 내년엔 완화될 것”이란 메시지를 시장에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올 하반기 들어 급등세를 타고 있다. 미 노동부 및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제공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올 하반기 들어 급등세를 타고 있다. 미 노동부 및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제공
상당수 이코노미스트들은 미 물가가 실제로 내년엔 상당히 완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Fed 예상대로 내년 물가가 2.6%까지 낮아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플랜트 모란 파이낸셜어드바이저의 짐 베어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인플레이션이 시간을 두고 완화할 것으로 보지만 과거처럼 2%대 밑으로 떨어지는 추세는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나로프 대표는 “Fed가 2% 물가를 계속 얘기하고 있지만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금리 인상


Fed는 테이퍼링(채권 매입 감축)에 이미 착수했다. 내년 3월 이전에 테이퍼링 절차가 모두 종료된다. 채권 매입 절차가 끝나는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이 높기 때문에 내년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Fed는 2018년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전망이다. 팬데믹 이후의 제로 금리 시대가 끝나는 것이다.

대출 금리 상승은 작으나마 경제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들이 주택을 구입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30년짜리 모기지 금리는 현재의 연 3.0% 안팎에서 3.75%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자동차 할부금도 높아질 수 있다.

프릭 이코노미스트는 “고금리는 주택 리파이낸싱(대출 재조정) 및 주택 구입 수요를 둔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대로 팬데믹 후 제로 금리 시대에 큰 피해를 입었던 예금 생활자들은 이제 좀 여유를 되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 양도성예금증서(CD)나 예·적금 금리가 소폭이나마 오를 수 있어서다.

프릭 이코노미스트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금리와 고물가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인력난


6개월 전만 해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수백만 명의 잠재 근로자들이 일터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했다. 팬데믹 후 스스로 일터를 떠났거나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서둘러 일자리를 찾아나설 것으로 봤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전문가들은 수백만 명의 과거 근로자들이 영원히 일터를 떠났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중 상당수는 은퇴를 결심했다. 증시 활황에 따른 부의 축적이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결정을 도운 것으로 파악된다.

틸리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영원히 일터를 떠났다”고 강조했다.

그의 분석이 맞다면 인력난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빈 자리를 채우기 어려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겠지만 근로자 입장에선 소득 증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여유 자금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임금 급등


팬데믹의 긍정적인 측면 중 하나는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이다. 수십년 만에 목격하게 된 현상이다.

예를 들어 미국 내 시간당 평균 임금은 작년 거의 5% 상승한 것으로 파악됐다. 과거 10년을 돌이켜보면, 임금 상승률은 연 2%를 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내년 미국의 직장인 임금은 2008년 이후 가장 큰 상승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콘퍼런스보드 제공
내년 미국의 직장인 임금은 2008년 이후 가장 큰 상승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콘퍼런스보드 제공
기업 실적도 역대 최대 규모다. 기업들이 임금 상승분을 충분히 상쇄하고 남을 만큼 이익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소비자 지출은 미국 경제 성장의 주력 엔진이다. 모든 경제 활동의 70%를 소비가 차지하고 있다.

프릭 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 사이에선 불만이 많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엔 대단히 좋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2% 미만의 경제성장률이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며 “3%대 성장으로 복귀하고 싶다면 임금을 더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급 충격


공급 병목이 심각했다. 로스앤젤레스 롱비치 뉴욕 뉴저지 등 항만마다 적체가 심했고, 창고는 부족했다. 트럭 운전사를 구하기 어려웠다. 수십년 만의 최대 공급난이 닥쳤던 이유다.

공급난은 점차 완화하겠지만 내년에도 문제는 남을 것이다. 코로나19 변이가 여전히 기승을 부릴 것이기 때문이다. 공급 문제를 쉽게 해소하기 어려울 정도로 ‘약한 고리’가 너무 많다.

Fed가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베어드 CIO는 “수요를 줄이기 위해 금리를 높일 수 있지만 Fed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화물선 적체를 해소하거나 아시아 공장 가동률을 높일 수 있는 건 아니다”고 했다.

많은 기업들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중국에 배치했던 공장이나 운영 지점 등을 미국으로 되돌리려는 곳도 있다. 하지만 금세 될 일이 아니다.

나로프 대표는 “빠른 시간 내 미국으로 다 갖고 오는 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미지의 불확실성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 국방부 장관은 일전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일(unknown unknowns) 때문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부 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부 장관.
이코노미스트들은 팬데믹 이후 겸손함을 배웠을 것 같다. 너무 많이 틀렸고 중대한 일을 예측하는 데 실패해서다. 내년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게 분명하다.

프릭 이코노미스트는 “1년 전만 해도 공급난을 예상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며 “지금과 같은 높은 인플레이션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미래 예측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애당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