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는 데에는 외부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 내부 요인만 따진다면 원‧달러 환율이 올랐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달러예금 잔고가 크게 늘어난 데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도 순매도 추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수출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은 지금 당장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요인은 미국에서 제공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달러 가치는 머큐리(Mecury‧펀더멘털)와 마스(Mars‧정책)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전자는 미국 경기와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 등을 말한다. 미국 경기는 3분기 성장률이 전기대비 연율 33.1%로 급반등했지만 2분기 -31.7%로 추락한 것에 따른 기조 효과 요인이 가장 크다. 이 때문에 Fed는 제로 금리를 2023년까지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후자도 전형적인 정치꾼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이 ‘강한 달러’를 표방해 왔던 전통을 깨고 자신의 공약사항인 중국과의 무역적자만을 줄이기 위해 달러 약세를 추구해 왔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종전과 달리 ‘환율전쟁’보다 ‘탈달러화’로 대응해 달러 약세 현상이 가속되고 기축통화로서 달러 위상마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한번 떨어진 기축통화 위상을 재강화하는 과제는 쉽지 않다. 같은 선상이지만 위안화 가치가 유독 빠르게 절상되고 있는 것이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홍콩 시위대와 코로나 사태가 겹치면서 달러당 7.5위안 이상 절하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6.6위안대로 절상됐다. 골드만삭스 등이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봤던 ‘스위트 스팟(미‧중의 이해관계를 잘 반영하는 적정선으로 6.8∼7위안)의 하단이 1년 앞당겨 무너져 중국 인민은행조차도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위안화 가치가 절상되는 것은 중국 경기가 빨리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축출설’이 나돌 정도로 정치적 입지가 약화됐던 시진핑 국가주석이 ‘발병 발원지’라는 오명을 극복하고 경제활동 재개 등을 신속하게 결정하면서 경기가 ‘V’자형(1분기 -6.8%→2분기 3.2%→3분기 4.9%) 반등에 성공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중국 경제가 올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위안화 가치가 절상됨에 따라 지지부진했던 일대일로 계획도 활기를 찾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도입한 디지털 위안화는 ‘더 늦춰지면 아시아 중심통화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디지털 엔화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할 만큼 빠르게 정착되는 추세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디지털 유로화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미국 중앙은행(Fed)도 조만간 디지털 달러화 도입을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페트로 달러화’란 별칭이 붙을 만큼 달러화 비중이 90% 이상 차지했던 원유결제시장에서도 위안화 결제가 처음 시작돼 ‘페트로 위안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각국의 외화 보유에서 시작된 탈달러화 추세가 결제시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어 2차 대전 이후 지속돼 왔던 달러 위주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차이메리카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임 이후 ’아베노믹스가 어떻게 될 것인가‘도 앞으로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다.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던 것은 미국 버클리대의 베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지적한 ‘엔고의 저주’ 때문이다. 경기가 침체되면 엔화 가치가 약세가 돼야 하지만 거꾸로 강세가 돼 침체의 골이 더 깊어졌다.
‘경기 실상과 통화 가치가 따로 노는 악순환 국면을 차단하는 것이 일본 경기를 회복시키는 최후 방안’이라는 미국 예일대 하마다 고이치 명예 교수의 권고를 받아들였던 것이 ‘아베노믹스’다. 2012년 말부터 아베 정부는 발권력까지 동원해 인위적으로 엔저를 유도해 경기를 부양시켜 왔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
‘환율’이란 매개변수로 인접국 혹은 경쟁국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정책이 추진 세력과 관계없이 지속될 수 있으려면 ‘공생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베노믹스는 추진 초부터 가장 우려됐던 점이 ‘로빈스 크루스 함정’이다. 인위적인 평가절하는 대표적인 근린궁핍화 정책이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 추진 이후 각국의 태도를 보면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자국에 미칠 부작용을 우려해 인위적인 엔저 유도를 저지한 국가다. 엔저에 따른 유로화 강세 피해가 심했던 유럽 국가들이 이 부류에 속했다. 다른 하나는 일본 경제가 당면한 디플레이션을 타개하는 자구책으로 인식해 엔저를 묵인했던 국가다. 미국이 유일했다.
2년 전부터 아베노믹스의 추진력이 잃었던 것은 버팀목이었던 미국의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도 환율 조작에서 피해갈 수 없다’고 경고했다. 미국 입장에서 아베노믹스의 한계를 비판한 첫 조치로, 그 후 발표된 환율 보고서에서 일본의 지위가 환율 조작국 예비 단계까지 격상시켰다.
스가 요시히데 신정부가 출범한 이후 아베노믹스를 계승한다고 선언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반대하고 있어 쉽지 않아 보인다. IMF를 비롯한 대부분 예측기관은 일본 경제는 다시 어려워지고 엔화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위안화보다 떨어지지만 엔화와 원화 간 동조화 계수가 ‘0.3’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엔화 가치가 올라갈 경우 원화 가치도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전반적인 달러 약세 추세 속에 위안화와 엔화 가치가 동반 절상된다면 원‧달러 환율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안화 요인만 따져 보자. 코로나 사태 이후 위안화와 원화 간 동조화 계수가 ‘0.7’ 내외인 감안하면 로이터 통신 등이 조사한 결과대로 위안화 가치가 1년 후에 6.3위안대로 절상될 경우 원‧달러 환율은 1100원 밑으로 하락하는 것으로 나온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강세’를 예상해 달러를 사둔 투자자와 해외주식을 사둔 서학개미들은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달러 약세는 실제보다 더 심각하다. 달러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보편적인 잣대인 달러인덱스를 처음 발표됐던 1973년 이후 달라진 세계교역비중을 감안해 종전의 6개 구성통화에서 스웨덴의 크로네화를 빼고 중국 위안화를 넣어 재산출하면 ‘85’ 밑으로, 지금 수준인 ‘93’ 내외보다 10% 가깝게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국민은행 등에 따르면 달러 투자자와 서학개미들이 입은 환차손이 의외로 큰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위기 당시 ‘낙인 효과(stigma effect)’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부 기업인들은 ‘제2의 키코’ 사태를 우려할 정도다. 이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1130원대로 떨어진 틈을 타 환차손을 물타기 하기 위해 체리 피킹(저가 매수)하기보다는 과도한 달러 보유분을 줄여나가는 동시에 환위험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켜 나가야 한다. 한상춘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