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옐런은 인플레 봉인을 해제했나

거칠 것 없는 상승세입니다. 8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는 주요 지수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다우는 0.76% 올랐고, S&P 500 지수는 0.74%, 나스닥은 0.95% 상승했습니다. S&P 500 지수는 처음으로 3900선에 올랐습니다. 3%만 더 올라 4000이 되면 S&P 500 지수는 2022년 기업 이익 추정치를 기준으로도 주가이익비율(P/E) 20배가 됩니다.

그동안 상당기간 조정을 예고해온 모건스탠리의 마이크 윌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날 "조정이 끝났다"며 두 손을 들었습니다. '게임스톱 사태'로 지난 1월26~29일간 4% 가량 내렸던 게 조정이었던 셈입니다.

윌슨이 두 손을 든 건 이해가 갑니다. 이날 주식뿐 아니라 모든 자산이 폭등했습니다.

국제 유가는 1년 만에 처음 6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브렌트유는 2.1% 급등해 배럴당 60.56달러를 기록했고 미 서부텍사스원유(WTI)도 2% 뛰어 배럴당 57.97달러에 마감됐습니다. 한참 경기가 좋았던 작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유가는 올 들어 벌써 20% 가량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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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2.96%) 구리(1.43%) 금(1.08%) LNG(0.73%) 등 주요 상품들도 모두 오르면서 기록적 수치를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이날 블룸버그 상품지수는 1.30%나 급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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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자동차에서부터 불거진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는 각종 디바이스 가격 상승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반도체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 등 여파가 자동차를 넘어 휴대전화와 게임기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소니는 올해 새로운 게임콘솔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지난 3일 밝혔습니다. 애플도 최근 부품 부족으로 일부 하이엔드 아이폰 판매가 제한받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오는 10일 발표될 1월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가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의 PPI는 지난 12월까지 11개월 연속 하락했지만 이달에 전년 동기 대비 0.5%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PPI가 오르면, 수출을 통해 인플레가 세계로 퍼지게 됩니다.

이날 시장 금리도 급등했습니다. 미 국채 30년물은 처음으로 한 때 연 2%를 넘었습니다. 연 2%는 바로 Fed의 물가 목표치입니다. 이를 넘어서려고 하고 있는 겁니다. 10년물은 8일 연속 상승해 연 1.201%까지 올랐습니다. 각각 지난해 2, 3월 이후 최고치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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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금리와 자산 폭등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부양책을 밀어붙이기로 한 데 따른 겁니다. 공화당의 중도파 의원들이 제안해온 6180억 달러를 물리친 민주당은 백악관,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힘을 바탕으로 원안 통과에 나섰습니다. 지난 주 미 상원에서 하원은 예산결의안을 가결해 이제 각각 과반수 동의한 구하면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에 민주당은 이날 추가로 자녀 세액공제를 연간 1인당 3600달러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번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부양책을 관철시키고 나면 또 다른 부양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부양책이 실업 구제를 위한 것이라면, 이제는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월가에서는 곧 1~2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딜이 추진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 7일 의회에 1조9000억 달러의 부양책을 처리해 줄 것을 촉구하면서 "부양책을 도입하면 내년에 다시 완전고용으로 돌아갈 수 있다. 느린 경제 회복에 고통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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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블루 웨이브'로 대규모 부양책이 예상되는 가운데 월가에선 경제가 재개되는 오는 4~6월 2%를 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해왔습니다. 1조6000억 달러나 더 쌓인 저축이 소비로 이어지고, 유가는 이미 작년 4~6월께보다 훨씬 오른 상태이니까요.

이런 인플레는 일시적일 것이란 예상이 대다수였습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도 지난달 "사람들의 삶이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때 소비가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인플레가 얼마나 크게 그리고 오래 지속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팬데믹 이후 1000만 명 가까이 불어난 실업자로 인해 장기적 인플레이션의 요인인 임금 상승이 나타날 가능성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옐런의 발언으로 우려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내년에 완전고용이 이뤄진다면 임금 상승에 기반한 인플레이션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민주당은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방정부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7.25달러보다 두 배 이상 높습니다.

이날 유럽에선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인플레이션에도 충분한 부양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당장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우려를 표하고 나섰습니다. 서머스는 5일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과도한 부양책에 따르는 위험보다 불충분한 부양책에 따르는 리스크가 더 크다는 판단에 동의한다"면서도 "보기 드문 수준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생겨날 수 있고, 달러 가치와 금융 안정성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이번 부양책 규모가 GDP 갭(잠재성장률과 실질성장률 차이)의 세 배에 달할 정도로 지나치게 크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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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경제학자인 올리비에 블랜차드 전 MIT 교수도 "엄청난 부양책으로 발생한 돈이 막대한 소비로 이어져 만약 인플레가 발생한다면 2.5% 수준이 아닌 강력한 인플레가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시장에 반영된 것보다 훨씬 큰 Fed의 매우 높은 금리 인상도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민주당에 가까운 경제학자들입니다. 서머스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까지 지낸 사람이죠.

이런 상황은 이날 뉴욕 증시에서 강력한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를 촉발시켰습니다. 투자자들이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에 확신을 갖고 수혜주인 경기민감주와 소형주들을 집중 매수한 겁니다. 에너지 업종은 이날 4.17% 폭등했고, 금융업종도 1.22% 올랐습니다. 소형주 지수인 러셀 2000은 2.53%나 급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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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가 캘리포니아주에서 테마파크 재개를 논의한다는 소식에 4.88% 치솟아 사상 최고가인 190달러로 마감됐고 델타 5.08% 아메리칸에어라인 3.37% 등 항공주도 폭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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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관계자는 "아직 금리 상승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물가 우려보다는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더 큰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미 국채 10년물과 2년물의 장단기 금리차는 2019년 이후 가장 커졌습니다. 장단기 금리차 확대는 대표적인 경기 회복의 신호로 꼽힙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2분기 GDP 성장률을 종전 10%에서 11%로 높였습니다. 예상보다 큰 부양책 통과를 반영한 겁니다. 또 2021년 성장률은 6.8%, 2022년은 4.5%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모두 이전 추정치보다 0.2%포인트 높은 겁니다.

부양책뿐 아니라 백신 보급 상황도 미국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7일 하루 2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접종을 받았습니다. 주말 이틀 동안 접종인원은 400만 명에 육박합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하루 100만 명 접종 목표를 훌쩍 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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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준 신규 확진자도 8만8044명까지 낮아졌습니다. 8만 명대는 작년 11월 2일(8만5109명) 이후 처음입니다. 존슨앤드존슨의 1회만 맞아도 되는 백신은 이달 중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뉴욕시는 이날 오는 2월25일부터 학교 대면수업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혹시라도 치솟는 금리가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요?" 이날 월가에서 가장 많이 나온 투자자들의 질문일 겁니다.

이에 대해 소시에테 제네랄(SG)은 가파른 금리 상승이 이어지면 주식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짐 라이드 도이치방크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미국의 재정 및 통화정책 행보를 감안할 때 인플레이션 상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역사적으로 낮은 현재 금리는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보다 훨씬 낮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상승하는 금리가 증시 랠리를 망치려면 한참 남았다"고 밝혔습니다. 골드만이 예상하는 티핑 포인트는 10년물 기준 연 3.5% 수준입니다.

골드만삭스는 또 금리 수준보다는 금리 변화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증시는 통상 금리의 점진적 상승은 잘 소화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달에 30~40bp(1bp=0.01%포인트)가량 급하게 오를 경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마침 오는 10일 미국에선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됩니다. 헤드라인 CPI와 에너지 및 음식료를 제외한 근원 CPI 모두 연 1.5% 상승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팬데믹이 이어지고 있어 보복적 소비 등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예상보다 높은 물가가 나올 경우 인플레 불안은 커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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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에는 중국에서도 CPI와 PPI가 발표됩니다. 월가 관계자는 "이제부터는 물가를 지켜보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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