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고르고 '확전 억제' 베팅하는 시장…美 소비 강세 더해지며 하락 [오늘의 유가]
확전 우려 가라앉자 6달만 최고치서 하락
브렌트유 2거래일 연속 배럴당 90달러대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이란의 공격이 관리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국제유가도 뜀박질을 멈추고 숨 고르기에 나섰다.

15일(현지시간)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6월물은 전 거래일보다 0.4%(0.35달러) 내린 배럴당 90.1달러에 장을 닫았다. 하락세로 방향을 틀었지만, 2거래일 연속 배럴당 90달러대를 유지했다.

같은 날 미국 유가 표준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물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전 거래일 대비 0.29%(0.25달러) 하락한 배럴당 85.41달러에 마감했다.
숨 고르고 '확전 억제' 베팅하는 시장…美 소비 강세 더해지며 하락 [오늘의 유가]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에 따른 유가 상승 여력은 지난 주말을 앞두고 이미 원유 시장에 선반영됐다는 평가다. 피해가 적었던 이스라엘이 즉각적인 맞보복에 나서지 않은 데다, 이란 정부도 자국에 대한 추가적인 도발 없이는 이스라엘을 계속 공격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상황이다.

SIA자산운용의 콜린 시진스키 수석 전략가는 마켓워치 인터뷰에서 “이란의 공격은 실질적인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원유 시장은 단기적인 유가 상승만 맛보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RBC캐피털마켓의 헬리마 크로포트 원자재 전략 책임자도 CNBC방송에 출연해 “시장은 이 전쟁 이야기의 한 챕터가 우선은 끝났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중동 긴장 고조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거뜬히 넘어설 거란 예측이 한때 힘을 얻었지만, 이 같은 강세 전망도 다소 누그러진 분위기다. 삭소뱅크의 올레 한센 원자재 전략 책임자는 “유가에는 이미 (중동 긴장으로 인한) 위험 프리미엄이 반영돼 있다”며 “실질적인 공급 차질이 발생하지 않는 한 배럴당 100달러로 뛸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숨 고르고 '확전 억제' 베팅하는 시장…美 소비 강세 더해지며 하락 [오늘의 유가]
작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중동 분쟁은 지난 6개월간 원유 공급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이번에도 그랬다는 평가다.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300만배럴 수준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많다. 같은 날 미 에너지정보청(EIA)이 자국의 일일 원유 생산량이 1만6000배럴 이상 늘어난 986만배럴로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히며 공급 차질 우려는 또 한 차례 상쇄됐다.

이에 더해 ‘아이언돔’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방어 능력이 시장의 불안감을 덜어내는 데 일조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스라엘의 방공요격시스템은 이란군으로부터 날아 온 300여 개 드론과 미사일을 99% 요격하는 데 성공했다. 밥 요거 미즈호증권 에너지 선물 담당 디렉터는 “이스라엘이 방어에 성공하면서 지정학적 위험이 큰 폭으로 사그라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미국의 소비 지표도 유가에 하방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미국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7%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시장 예상(0.3%)을 웃도는 ‘깜짝’ 증가세였다. 요거 디렉터는 “소매판매 데이터는 미국의 고금리가 더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석유 수요를 후퇴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고 짚었다.
숨 고르고 '확전 억제' 베팅하는 시장…美 소비 강세 더해지며 하락 [오늘의 유가]
다만 이스라엘의 대응 수위에 따라 중동 지역 긴장은 언제든 원유 시장에 충격파가 될 수 있다는 경계감은 여전하다. 시진스키 전략가는 “위험은 여전히 크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상태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JP모간체이스도 “지금껏 대리인을 내세워 왔던 이란이 교전 규칙을 다시 쓰고 있다”며 “이는 이스라엘의 대응을 촉발해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라이스타드에너지의 호르헤 레온 수석 부사장은 “최악의 경우 이스라엘의 강력한 보복은 확전의 소용돌이로 이어져 전례 없는 지역 분쟁으로 번질 수 있고, 이때 지정학적 프리미엄은 급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현지 매체인 채널12 방송은 자국 전시 내각에서 “여러 보복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며 “모든 선택지는 역내 전쟁을 촉발하지 않으면서도 이란에는 고통스러운 방식”이라고 보도했다. 리오르 하이아트 이스라엘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은 침략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표했다. 다만 일간 하레츠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이 군사적 보복을 선호했지만, 동맹국인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의 압박으로 수위 조절에 나섰다고 전하기도 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