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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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며 투자자들에게 외면받던 튀르키예(터키) 국채 시장에 다시 외국인 투자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 뒤 광범위한 경제 개혁을 추진한 결과다. 오랜 기간 고집한 저금리 정책을 폐기하고 중앙은행에 경제 정책 전권을 맡기며 신뢰도를 회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7월 초부터 이날까지 외국인 펀드 매니저들은 리라화 표시 튀르키예 국채를 8억 6000만달러어치 매입했다. 2021년 이후 반기 기준으로 최대치를 찍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튀르키예 국채를 매입하는 배경엔 에르도안 대통령의 변심이 있다. 당초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高)금리는 악이다"라며 저금리 정책을 고집했다. 물가 상승세를 억제하겠다며 대선 이전까지 금리를 인하할 것을 중앙은행에 요구했다. 이 때문에 튀르키예 금리는 2021년 9월 연 19%에서 올해 2월 연 8.5%까지 하락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5월 3 연임에 성공한 뒤 입장을 바꿨다. 경제학 상식에 맞지 않는 정책을 모두 폐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경제팀부터 다시 꾸렸다. 지난 6월 골드만삭스 출신 은행가인 하피즈 가예 에르칸을 튀르키예 중앙은행 총재로 선임했다. 투자은행(IB) 메릴린치를 거쳐 경제부장관, 부총리를 역임한 메멧 심섹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다.

에르칸 튀르키예 중앙은행 총재는 부임 직후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지난 6월 기준금리를 종전 연 8.5%에서 연 15%로 6.5%포인트 인상했다. 이후 11월까지 5개월간 25%포인트 끌어올렸다. 튀르키예 재무부는 세율을 인상하며 세수를 확보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리라화를 이전보다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튀르키예 채권 시장에 '돌아온 외국인'…2021년 상반기 이후 최대 자금 유입
연일 치솟는 물가상승률을 완화하기 위한 강경책이었다는 평가다. 지난 10월 튀르키예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61.26% 상승했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지난해 11월(85.51%)에 비하면 소폭 하락한 모습이다.

시장에선 튀르키예의 전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캐롤 카렌자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새로운 통화·재정정책이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튀르키예는 인플레이션에 맞서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있고, (정부는) 재정 악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통화 긴축으로 인해 튀르키예 국채 금리가 치솟으며 투자 매력도가 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튀르키예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10일 기준 35%대로 2025년 인플레이션 추정치(14%)의 두 배를 웃돈다.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도 올 들어 35% 감소했다. 펀드 매니저들이 튀르키예 국채를 저가 매수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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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문디 자산운용의 세르게이 스트리고 신흥시장 채권부문 공동대표는 "튀르키예 국채 시장에 참가하지 않았던 글로벌 투자자들이 그동안 유지했던 비중 축소 포지션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튀르키예 국채 투자가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튀르키예 정부가 또다시 정책을 뒤집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튀르키예가 이스라엘 전쟁을 두고 서방 국가와 척지는 행보를 보이면서 지정학적 위험도 커지는 양상이다.

자산운용사 나인티의 공동대표 그랜트 웹스터는 "튀르키예 정부가 자국 내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흘러가는 자금에 대해 암묵적으로 승인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며 "정치적 불안정성만 없다면 튀르키예 국채 가치는 지금보다 더 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