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사진=AFP
뉴욕 월가에선 미국 디플레이션에 대한 전망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월마트와 같은 소매업체를 중심으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다 실제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개인소비지출(PCE) 등 대표 물가 지표들도 둔화 추세를 보여서다.

자동차와 부품 가격, 가전, PC 등 내구재를 중심으로 가격이 빠르게 내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4%를 웃도는 높은 임금 상승률은 변수가 될 수 있다. 고임금에 따른 소비 진작이 인플레이션 상승압력을 넣을 수도 있어서다.

“내년 9월 인플레 1.8%”


모건 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들은 공급망 개선과 수요 약화로 인해 내년 중반까지 디플레이션이 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내년 9월에는 전체 PCE의 전년 동기대비 상승률이 1.8%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2026년이 돼서야 목표치인 2%로 회복할 것으로 내다본 미국 중앙은행(Fed)의 예상치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이같은 전망이 나오는 것은 내구재의 가격 하락 때문이다. 10월 신차 및 중고 자동차 및 부품 가격은 9월에 비해 0.4% 하락하며 5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가정용 가구는 0.2% 떨어졌고, 컴퓨터 장비와 같은 오락 용품은 0.4% 떨어졌다. 스위스의 투자은행 UBS 소속 경제학자인 앨런 데트마이스터는 “자동차가 내년 상당 기간 인플레이션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UBS는 또한 내년 4분기에 인플레이션이 1.7%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며 경기 침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소매업체들도 디플레이션 현상을 언급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현상은 실물 경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건축자재 유통업체인 홈디포의 상품화 담당 부사장인 윌리엄 바스텍은 지난달 컨퍼런스콜에서 “목재와 구리의 가격 하락으로 고객들의 평균 구매 증가율이 억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면서 상품 가격도 하락해 고객들의 구매 규모가 예전 속도로 늘지 않는다는 뜻이다.
월마트 미국 지사 CEO인 존 퍼너 또한 “가격 인하 품목의 수가 작년에 비해 50% 증가했다”고 밝혔다.

고금리 효과 시작


내구재를 중심으로 한 디플레이션이 본격화하자 Fed의 통화 긴축 정책이 실물 경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금리에 따라 자동차 대출,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이자 등이 영향을 받으면서 미국 국민들의 소비 여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용정보기관 이퀴팩스에 따르면 금융위기 당시 서브프라임 대출의 60일 이상 연체 발생률이 5%였으나 현재는 7%에 육박하고 있다. 무디스 애널리스틱스의 마이크 브리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체율 상승에 대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증가 속도가 정상(속도)보다 너무 빠르다”고 말했다.

메이시스나 노드스트롬 백화점 등 주요 소매업체들도 최근 올해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개인들의 신용카드 연체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메이시스 백화점의 애드리안 미첼 최고운영·재무책임자는 “2분기 연체율이 증가할 것으로 봤지만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다”고 전했다.

공급망 문제 완화도 디플레이션에 기여했다. 뉴욕 연방 준비은행이 발표하는 글로벌 공급망 압력 지수(GSCPI)는 10월에 마이너스 1.74까지 떨어지며 1997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 또한 지난 9월 “상품 가격 하락은 △수요 약화 △(공급망에서) 원활한 배송 △금리 상승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임금 상승이 변수


하지만 여전히 뜨거운 고용시장과 이에 따른 임금 상승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비농업 부문 임금 상승률은 10월 4.1%로 2021년 10월 이후 가장 낮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인 2~3%보다는 여전히 높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이윤이 인플레에 미친 영향은 지난 1분기 2.85%포인트에서 2분기 1.71%포인트로 감소했다. 반면 임금을 뜻하는 노동비용의 영향은 3.52%포인트에서 3.57%포인트로 증가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