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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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버핏의 오른팔이었던 찰리 멍거가 9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9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버크셔 해서웨이는 보도자료를 통해 찰리 멍거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버핏은 성명을 통해 “찰리의 영감과 지혜, 참여가 없었다면 버크셔 해서웨이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핏은 자신의 생애에 "가장 성공한 투자는 찰리 멍거를 채용한 것"이라고 말해왔다.

버크셔의 부회장이었던 멍거는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데일리 저널사의 회장겸 발행인이고 코스트코(COST)의 이사, 자선사업가 및 건축가였다.

그의 재산은 올해초 기준으로 23억달러(2조9.700억원)로 추산된다.

그의 가장 성공적인 투자로는 2008년 버크셔 해서웨이가 중국의 BYD에 2억3,000만달러를 투자해 2억2,500만주를 매입하도록 버핏에게 조언한 것으로 꼽힌다.

이후 투자 가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최근 홍콩 증권 거래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버크셔 해서웨이는 10월 말까지 약 7.98%의 BYD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주식의 가치는 이후 20배 이상 올랐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지난해 중반 이후로 BYD 지분의 절반을 넘는1억3,700만주 이상을 매각했음에도 남은 1억주 미만의 보유지분으로도 185억4000만 홍콩달러(24억 달러)에 이른다.

두꺼운 안경을 썼던 멍거는 1980년 백내장 수술로 인한 합병증으로 왼쪽 눈을 잃었다.

버핏은 당초 자신이 문제가 있는 기업을 싸게 사는 전략을 선호했으나 멍거 덕분에 좋은 기업이 저평가될 때 사는 전략으로 확장됐다고 공로를 인정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된 사례가 1972년 연간 세전수익이 약 400만달러에 불과한 캘리포니아의 캔디업체인 시즈캔디를 멍거의 설득에 2,500만달러에 인수한 사례다. 이후로 시즈캔디는 매년 버크셔에 2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안겨주고 있다.

버핏과 마찬가지로 네브라스카 오마하주에서 태어난 멍거는 1943년 육군에 입대하면서 캘리포니아 공대로 진학하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변호사가 된 후 캘리포니아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버핏처럼 멍거도 버핏의 할아버지가 운영한 잡화점에서 일하기도 했으나 두 사람은 십여년 후에야 만나게 됐다.

멍거가 35세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법률 사무소 일을 정리하러 오마하에 왔을 때 당시 29세였던 버핏을 만나 평생 친구가 됐다.

투자와 인생에서 지혜의 샘으로 평가됐으며 유머가득한 통찰력으로도 유명했다.

멍거는 자신이 설립한 헤지펀드를 1975년에 폐쇄하고 3년 뒤에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이 됐다. 이후 멍거는 1984년부터 2011년까지 캘리포니아에 있는 웨스코 파이낸셜의 회장 겸 CEO였으나 이후 버크셔가 인수해 멍거가 다시 버크셔에 합류했다.

버핏은 1977년 오마하 월드-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멍거는 종종 “소름끼칠 정도로 생각이 너무나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2018년 CNBC와의 인터뷰에서 버핏은 “멍거와 알고 지낸 60년간 한 번도 말다툼을 한 적이 없었다”며 “찰리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고, 덕분에 더 나은 삶을 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멍거는 “모든 현명한 투자는 가치 투자, 즉, 지불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며 주식의 가치를 평가하려면 기업의 가치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멍거는 공식적으로 건축가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학교가 그의 건물 설계를 수락한다는 조건으로 미시간 대학교, 스탠포드 대학교 및 하버드 로스쿨을 포함한 교육 기관에 수억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멍거는 2019년 로스앤젤레스의 하버드-웨스트레이크 사립학교에 과학 센터 건물을 설계하면서 여자 화장실을 남자 화장실보다 크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하면서 “축구 경기나 행사에 갈 때마다 여자 화장실 밖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어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을 같은 크기로 만드는가? 정답은 평범한 건축가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2019년 2월 스쿼크박스와의 인터뷰에서 멍거는 “길고 행복한 삶의 비결에 대해 간단하고 진부하지만 △시기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으며 △버는 것보다 덜 쓰고 △어려울 때도 쾌활함을 유지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거래하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아 객원기자 k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