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편집장 레터
세기의 경쟁, 에너지전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국내 기업의 희비가 엇갈립니다. 국내에서 전기차를 생산해 미국 시장에 수출해온 완성차업체는 당장 보조금 혜택이 끊기게 돼 점유율 하락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핵심 소재 조달처를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바꿔야 하는 배터리업계도 표정이 밝지만은 않습니다. ‘북미 생산’과 ‘탈중국’이라는 미국이 내건 조건 때문입니다. 한국 입장을 전할 정부 대표단이 급파됐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까지 거론됩니다.

이런 일련의 긴박한 대응 움직임을 보면서 한편으론 마음이 답답합니다. 불합리한 불이익을 받아들여선 안 되고, 최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 핵심적 논점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탈탄소와 클린에너지에 3690억 달러를 투입하는 ‘기후법’입니다. 미국 언론은 ‘가장 야심 찬’,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를 아끼지 않습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은 미국이 에너지전환이라는 세기의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장 눈앞의 손해를 걱정하기 앞서 에너지전환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반성해야 합니다. 정부는 전력 수급 기본계획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을 글로벌 흐름과는 정반대로 기존 목표치보다 10%포인트가량 낮추려고 합니다.

미국에선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녹색 레이스에서 여전히 중국에 한참 뒤처진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블룸버그 NEF의 집계를 보면, 세계에서 에너지전환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작년 한 해에만 공공투자와 민간투자를 합쳐 2975억 달러를 풍력과 태양광 등에 투자했습니다. 유럽연합(EU)이 2754억 달러로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미국의 가세로 에너지전환을 둘러싼 세기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호에는 맥킨지앤드컴퍼니가 낸 ‘Does ESG really matter―and why?’ 보고서 전문을 번역해 실었습니다. 최근 쏟아지는 ESG 비판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보고서는 ‘사회적 라이선스’라는 개념을 통해 ESG 비판론을 반박합니다. 사회적 라이선스 없이 어떤 기업도 생존할 수 없기에 기업으로서는 사회적 라이선스가 산소와도 같습니다.

러·우전쟁과 에너지 위기, 인플레이션의 충격 속에서도 에너지전환을 향한 세계의 전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장승규 <한경ESG> 편집장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