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도 파월도 모르게…밀실에서 결정되는 美 경기침체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미국에서 경기침체가 논란이 되다 보니 경기침체(recession) 관련 티셔츠까지 판매되고 있습니다. 경기침체에 대한 원망과 책임을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돌리고 싶은 마음이 잔뜩 담겨 있으니 공화당 지지자들을 겨냥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기가 나빠지고 있거나 이미 악화된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경기둔화(slowdown)와 경기침체(recession), 공황(depression) 등입니다. 물론 경기둔화와 비슷한 경기하강(downturn)도 있고 경기둔화 대신 경기확장(expansion)과 반대되는 의미로 경기위축(contraction)을 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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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경기둔화와 경기침체, 공황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또 recession은 여러 책과 기사에서 경기침체 외에 경기후퇴나 경기둔화 등으로도 번역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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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상 혼란이 가중되다 보니 급기야 개방형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서 'recession'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정의가 무엇이냐를 두고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분위기가 험해지자 위키피디아 측은 아예 더 이상 recessiond 정의에 대해 얘기하지 못하도록 자물쇠를 잠궈 버렸습니다. 오는 3일까지 어정쩡하게 봉합을 해놨는데 이 논란이 사그라들까요.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경기침체라고 선언하지 않는 한 이 논란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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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철썩같이 믿고 있는 '고용' 지표가 나오면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신규 일자리 증가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노동시장이 탄탄한 게 재확인되면 경기침체 우려가 잦아들어 7월에 이어 8월도 '뜨거운' 증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경기침체 논란을 중심으로 8월 첫째주 글로벌 증시의 주요 일정을 정리하겠습니다.

경기는 불황인데 침체 논의만 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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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악화하고 있다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그 정도와 향후 경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학계와 금융시장, 정계에서 모두 저마다의 설을 풀고 있습니다. 경기침체 논의의 불을 피운 건 2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2분기 GDP가 1년 전보다 0.9% 감소하면서 들썩거렸습니다. 1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경기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이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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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불황의 전조 중 하나인 장단기 금리 역전현상이 일어났습니다. 10년물 금리가 2년물보다 낮아지더니 이제는 6개월물보다 못한 상황입니다. 소비와 투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고 있고 생산은 여전히 저조합니다.

반면 다른 쪽에선 '기술적 경기침체'(technical recession)일 뿐 진정한 의미의 경기침체라고 부르기 힘들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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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재닛 옐런 재무장관,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절대 경기침체가 아니다"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노동시장 때문입니다. 매달 신규 일자리가 30만개 이상 생기고 실업률이 50년 내 최저 수준인 3.6%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그 근거입니다.

이들이 믿는 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경기침체를 선언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꽤 오래 걸리고 침체를 선언하는 주체만 잘 설득하면 침체 논란은 계속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침체 판정은 하세월 '느림보' N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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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경기침체를 공식 선언하는 곳은 미국경제연구소(NBER)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NBER 산하의 '경기사이클 판정위원회'(Business Cycle Dating Committee)입니다.

이 곳은 그동안 경기침체 시작을 알리는데 8~9개월이 걸렸습니다. 침체가 본격화한 지 9개월이 지난 뒤 "경기침체가 시작됐다"고 공식선언한 것입니다. 1년 이상 뒤에 침체를 확정한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통계 수치가 수정되는 사례가 많은 데다 다양한 통계를 보고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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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경기침체 이상 수준이었던 코로나19 초기 때 4개월 만에 침체 결정을 내린 게 상당히 빠른 경우였습니다. 위원회는 2020년 6월에 "넉달 전인 2020년 2월에 침체가 시작됐다"고 선언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경기침체가 왔다해도 우리는 몇 달 간 그런 사실을 모를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번은 어떨까요.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NBER 측은 "우리는 GDP로만 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GDP 뿐 아니라 고용과 소득, 지출, 산업 생산 등도 함께 검토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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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ER의 경기침체 정의 역시 애매합니다. NBER은 경기침체를 "경제 활동의 현저한 감소가 경제 전반에 확산되고 몇 달간 지속할 때"(It is a significant decline in economic activity that is spread across the economy and that lasts more than a few months.)로 정의합니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11월 중간선거 전엔 절대 경기침체를 공식선언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빨라야 내년 상반기에나 가능할 전망입니다.

무명 교수들만 모였다? NBER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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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ER의 구성과 운영을 두고서도 말이 많습니다.

NBER의 경기사이클판정위원회는 8명의 경제학 전공 대학교수로 이뤄져 있습니다. 모두 60세 이상의 백인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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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롱런하고 있습니다. 1978년 위원회 창립 멤버였던 로버트 홀 스탠퍼드대 교수와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45년째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79세로 위원회 의장인 홀 교수는 위원회 위원들을 임명하며 경기침체 결정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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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4세인 제임스 포터바 MIT 교수가 간사 및 대표 역할을 합니다. 홀 교수와 함께 위원 인사권을 쥐고 있습니다. 포터바 교수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출신으로 사실상 위원회를 창립한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의 애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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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위원회에 동부 아이비리그 출신의 남성 경제학자들만 있다는 비판이 일자 여성과 서부 출신들이 속속 가세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합류한 사람이 부부인 크리스티나 로머 UC버클리대 교수와 데이비드 로머 UC버클리대 교수입니다. 2017년에 위원이 된 발레리 레이미 UC샌디에이고대 교수(여)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8명의 현역 위원 중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없습니다. 전직까지 모두 포함해 17명 위원으로 범위를 넓혀도 이들은 노벨상과는 인연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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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위원들보다는 전직 중에서 좀더 유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벤 버냉키 전 Fed 의장도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위원으로 활동했고 경제학의 바이블로 통하는 '맨큐 경제학'의 저자인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도 9년 정도 활동하다 2000년 위원회에서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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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CNN비즈니스는 "들어본 적도 없는 경제학자 8명이 경기침체를 결정한다"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침체 논란의 핵심인 고용지표 발표

경기침체 논란 속에 이번 주에도 이와 관련된 지표들이 속속 발표됩니다.

투자나 생산과 관련된 공급관리협회(ISM)의 구매관리지수(PMI)가 나옵니다. 주문이 줄면 생산활동이 감소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동부시간으로 1일에 제조업 PMI가 나오고요. 3일에 서비스업 PMI가 발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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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이든 행정부가 철썩같이 믿고 있는 노동시장 지표는 5일 오전 8시반에 공개됩니다. 7월 고용보고서에서도 크게 세가지 지표에 주목해야합니다.

경기침체 여부를 알 수 있는 신규일자리수와 실업률, 그리고 인플레이션 지표 중 하나인 시간당 임금입니다. 시간당 임금보다 신규 일자리수와 실업률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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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 패널들의 컨센서스는 7월 신규일 자리수는 25만명 증가입니다. 전달 37만2000명보다 많이 줄었습니다. 예상보다 적으면 경기침체 우려가 커질 수 있습니다.

최근에 빅테크를 중심으로 불황에 대비해 감원을 하고 있는데요. 그런 추세가 지표로 확인될 수 있는 겁니다.

실업률은 3.6%로 전달과 같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요. 시간당 임금은 4.9%로 전달 5.1%보다 둔화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고용보고서 외에 노동부의 구인·이직 보고서(Jolts), 챌린저의 감원 보고서 등에서 노동 시장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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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보다 한 템포 이상 느린 유럽과 아시아는 여전히 인플레이션과 긴축 정국입니다. 영국이 4일에 기준금리를 결정합니다. 1995년 이후 27년 만에 빅스텝을 밟은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올 들어서면 한 번에 50bp(1bp=0.01%포인트)를 올린 국가 수만 70개국이 넘습니다. 이밖에 인도와 호주, 브라질 등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2일에 7월 소비자 물가가 나옵니다. 3일엔 OPEC+가 회의를 열어 증산 여부를 결정합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주엔 미국 내 경기침체 우려를 덜어내고 미국 밖에선 인플레이션과 긴축 발작을 극복할 수 있을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