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3월 19일 마포구 서울에너지드림센터에서 열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지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3월 19일 마포구 서울에너지드림센터에서 열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지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출 기업이 각국의 기후 무역장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책 금융기관, 5대 시중은행이 민관합동으로 452조원의 금융 지원에 나선다. 정부는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의 탄소배출 규제 강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국내 산업계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책자금은 저탄소 공정 증설, 재생에너지 확대, 기후변화 대응 기술 개발 등에 투입된다. 정부는 민간 금융 지원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 정비를 병행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탄소중립 규제는 새로운 유형의 무역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수출 등 기업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적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높아지는 기후 무역장벽

금융위원회, 환경부 등에 따르면 EU, 미국, 호주 등 각국의 탄소배출 규제는 까다로워지고 있다. 세계 최초의 ‘탄소세’로 평가되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부터 EU로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 6개 품목을 수출하는 역외 기업의 탄소배출량 보고가 의무화됐다. 오는 2026년부터는 탄소 관세가 본격적으로 부과될 예정이다.

탄소세뿐 아니다. EU와 중국, 일본 등은 2035년부터 전통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EU 플라스틱세(2021년), 미국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제한(2022년) 등 플라스틱 규제도 강화됐다. EU는 기업 공급망에 대한 지속가능 실사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도 자발적으로 탄소중립과 RE100을 선언하는 등 탄소배출 저감에 나섰다.

주요국은 기후 기술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해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EU는 저탄소 지원을 위해 이노베이션 펀드를 조성했다. 2030년까지 약 380억 유로를 투입할 예정이다. 미국은 탄소중립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연구개발(R&D)에 35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영국은 120억 파운드를, 호주는 180억 호주달러를 투자해 친환경 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각국의 탄소중립 규제 대응은 수출 기업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탄소배출 및 전력 사용량이 많은 제조업 수출 비중이 높은 상황이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기후 기술 발전이 필수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저탄소 공정 전환 및 제품 개발 지원

이에 따라 정부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 지원 확대 방안’을 수립했다. 2030년까지 정부와 정책 금융기관, 5대 시중은행이 민관합동으로 452조원의 금융 지원에 나선다.

우선 기업의 저탄소 공정 전환 및 제품 개발을 위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정책 금융기관이 2030년까지 420조원의 정책금융을 공급한다. 연평균 자금 공급량은 연 60조원으로 지난 5년 평균(연 36조원) 대비 67% 늘어난다. 연도별 공급량은 2024년 48조6000억원에서 2030년 74조4000억원으로 점차 증가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30년 온실가스배출이 약 8597만 톤 감축될 것으로 추산했다. 국가 감축목표의 29.5%에 달하는 규모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공급을 위한 투자도 확대한다. 글로벌 기업이 협력업체에 청정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추세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신재생발전 증설을 위한 금융 수요가 2030년까지 1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조달을 위해선 후순위 대출과 지분투자 등 모험자본 54조원 공급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마중물 역할을 위해 정책 금융기관과 시중은행이 23조원을 공동으로 공급하도록 했다. 우선 산업은행 등 정책 금융기관이 14조원의 후순위 대출을 공급해 민간 금융기관의 후순위 대출을 유도한다. 아울러 6개 은행(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산은)이 2030년까지 9조원을 출자해 미래에너지펀드를 신규 조성한다. 금융당국은 산업은행의 위험 흡수 역할을 고려해 위험 가중치를 현행 400%에서 100%로 인하해 적극적 투자를 유도할 예정이다. 정부는 결과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1.6%로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기후 기술 육성에도 나선다. 우선 민관합동으로 기후 기술 분야에 9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기업은행과 5대 시중은행(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이 2030년까지 총 3조원 규모의 기후기술펀드를 조성한다. 아울러 혁신성장펀드를 통해 2030년까지 총 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성장사다리펀드를 통해서는 민간 참여가 부진하거나 시장 조성이 미흡한 기후 기술 위주로 2030년까지 1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K-택소노미 고도화

기후 금융 지원을 위한 제도 정비에도 나선다. 녹색경제활동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는 한국형 녹색 분류체계(K-택소노미)를 고도화하고 적용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물, 순환경제, 오염방지, 생물다양성 등 4개 환경 목표의 녹색 분류체계 가이드라인은 연내 일부 개정하고 내년 12월까지 보완한다. 아울러 녹색 분류체계 적용 대상을 기존 채권에서 여신, 공시, 주식·펀드 등으로 확대한다. 금융위와 환경부는 금융권과 공동으로 녹색여신 관리 지침을 만들기로 했다.

녹색투자 활성화를 위한 기준과 제도도 마련하기로 했다. 탄소중립 관련 전문성 부족, 녹색위장행위(그린워싱) 우려 등으로 녹색투자에 소극적인 기업과 금융기관이 많아서다. 우선 상장기업이 기후 공시에 활용할 수 있는 온실가스배출량 산정에 대한 지침을 발간한다. 아울러 환경산업 특수 분류체계와 한국형 녹색 분류체계를 연계해 금융기관이 녹색투자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녹색금융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또 녹색채권, 융자 등 정부 지원을 대폭 확대한다. 2027년까지 민간 녹색투자를 총 30조원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연간 3조원 규모의 한국형 녹색채권 발행을 지원하고, 기업의 녹색투자에 대한 대출이자를 연간 2조원 규모로 지원한다. 한국 기업의 해외 프로젝트에 투자해 수주 가능성 및 사업 안정성을 높이는 녹색수출펀드도 올해 신설한다. 녹색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기술보증기금과 녹색산업 기술보증 사업을 신설할 예정이다.

배출권거래제 고도화도 추진한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배출권 거래 시장 활성화를 위해 금융투자상품의 단계적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배출권 연계 금융상품으로 제3자의 간접투자가 가능해져 합리적인 배출권 가격 형성과 거래량 증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위탁 거래를 도입해 거래 편의성을 높이고 제3자 참여도 확대할 예정이다.